책이름 :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지은이 : 정희진
펴낸곳 : 교양인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표지그림의 콘셉트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여자였다. 1・2권은 샐리 로젠바움의 백인 중년여성과 소녀가 원탁에 앉아 글을 쓰는 그림이었다. 3권은 에드워드 고든의 긴 사각 나무 테이블에 앉은 금발여성이 책을 읽으며 스마트폰을 검색하는 그림이었다. 나에게 표지그림 모두 생경했고, 낯선 현대 화가였다.
시리즈 3권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3부에 나뉘어 27편의 글이 실렸다. 4쪽 분량의 「기술 시대, 가짜 감정의 의미」에서 16쪽 분량의 「고통을 나눌 수 없는 세상과 투쟁하기」까지 다양했다. 1장. ‘아픔에게 말 걸기; 온몸으로 견디며 쓴다’는 저자가 평생 주제라고 밝힌 ‘고통’과 ‘몸’에 대한 글 8편이 실렸다. 불안에 대한 재해석 / 통증 연대기 / 흑인 수난사 /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의 역사 / 소통 불가능한 고통 등.
2장. ‘우리에겐 불편한 언어가 필요하다; 통념을 부수는 글쓰기’는 남성 중심사회의 여성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담긴 9편의 글이 담겼다. 가정폭력 / 가사 노동 / 자유주의 페미니즘 / 다윈주의 사회생물학 / 미군 아내들의 생애사(life history) / 일본군 위안부 등. 3장. ‘몸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 질문하고 해체하는 글쓰기’는 익숙한 논리와 상투적 언어를 깨 부순 사람들의 이야기 10편을 담았다. 실천적 지식인 리영희 / 베트남전쟁 참전용사 / 성산업 종사자의 경험을 담은 글 / 가난한 백인 여성의 노동기 / 여성의 시각으로 본 일본 근현대 100년 / 국가보안법과 여성의 고난 등.
여성학자가 선호하는 독후감은 뇌, 마음, 몸의 평화를 깨는 긍정적 의미의 스트레스와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극(stroke)을 주는 글이었다. 서평의 목적이 독자에게 책을 읽게 하는 것이므로 줄거리 요약은 필요 없었다. 그녀의 서평 쓰기 훈련은 글의 서두에 한두 줄 정도로 책의 내용을 집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27권의 책에서 내가 유일하게 잡은 책은 故 리영희 선생의 『대화』였다.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약자는 상대방을 ‘히트’하고 ‘런’할 수밖에 없지만, 강자(미국)는 전 세계 어디서나 ‘히트’하고 ‘스테이(stay, 주둔) 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구체성, 움직임, 위치의 정치성에 기반을 둔 그의 언어에는 당위적이거나 선언적인 논리가 없다.(181쪽)
1988년 리영희 선생은 당시 주미대사 제임스 릴리와 공개 논쟁을 벌였다. 릴리가 반미투쟁을 벌이는 한국 학생들이 폭력적이고, ‘히트 앤드 런(치고 빠지기)’의 비겁한 수법을 쓴다고 비난한 것에 대한 선생의 논박이었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그때 릴리는 아마! 입을 벌리고 한동안 답변을 못했을 것이다. 전 세계에 군대를 주둔・파견하고 힘으로 윽박지르는 미 제국주의의 본질을 까밝힌 선생의 한마디였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2 (0) | 2022.11.04 |
---|---|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0) | 2022.11.03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0) | 2022.10.31 |
격렬비열도 (0) | 2022.10.28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0) | 2022.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