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격렬비열도
지은이 : 박후기
펴낸곳 : 실천문학사
2016년 10월 중순경, 박후기의 『격렬비열도』를 잡았다. 1부의 마지막 시 「우리들의 중세」 전문을 올렸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마음에 멍울졌다. 2년이 흘렀을까. 군립도서관에서 대여목록에 없던 시인들의 오지여행 에세이 모음집 『고요에 들다』를 빼들었다. 박. 후. 기. 이름 석자의 힘이었다. 그리고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시집을 다시 손에 펼쳤다.
시인은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가슴의 무늬」외 6편의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이었다. 4부에 나뉘어 62편이 실렸다. 해설은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홍기돈의 「박제에 불어넣는 숨결, 각혈 빛깔 자목련을 꽃병에 꽂는 마음」이었다. 헌사獻辭 ‘밥이 되고 남은 것들이 겨우 시가 되기도 합니다’는 요절한 일본의 천재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1886-1912)를 노래한 「시인들」(17쪽) 3연의 한 구절이었다.
시인 허연은 표사에서 말했다.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미덕이 있다. 그들에게는 ‘착(着)’이 없다. 애착도, 집착도, 도착도 그들을 잡지 못한다. 길 위의 미덕. 박후기의 매력적인 시가 가진 미덕이다.” 나는 왜 시인의 시집을 다시 펼쳤을까. 고단한 노동에 찌든 소시민들의 남루한 삶과 쓸쓸한 풍경을 담은 시편들에 이끌렸다.
간이 굳어가는 아버지 / 시청 일용직 채용 면접 보는 누나 / 늙은 창녀 / 실업자 아들 / 꼭두새벽 일터로 향하는 엄마 / 시간 강사 오빠 / 아르바이트 소녀 / 비정규직 누나 / 피자 배달소년 / 이혼하고 집을 나간 엄마 / 짐꾸러미를 인 버스터미널의 사내 / 바닷가 비탈에 들러붙은 달동네 / 지하 을지로입구역 노숙자 / 베트남 엄마 / 전쟁상이용사 이모부 / 암 병동 병자 / 호스피스 병상 말기환자
첫 시집은 아쉽게도 품절이었다. 나는 시집을 닫으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를 가트에 넣었다. 마지막은 부제가 ‘베트남 엄마’로 「가족 도감 1」(92-93쪽)의 전문이다.
엄마는 귀화식물, / 주로 시골에 사는 / 여러해살이풀이다 // 원산지는 베트남, / 겁이 많고 / 키가 작다 // 한국 전역의 / 산과 들에 피어나지만 / 엄마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 꽃말은 안녕하세요. / 몸은 질기고 / 열매는 검붉다 // 가슴속 씨방에는 / 원산지에서 따라온 / 그리움이 멍울처럼 / 뭉쳐 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합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1) | 2022.11.02 |
---|---|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0) | 2022.10.31 |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0) | 2022.10.27 |
인간의 악에게 묻는다 (0) | 2022.10.26 |
도연명 전집 (0) | 2022.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