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너그러움과 해학
지은이 : 정양모
펴낸곳 : 학고재
초판 1쇄가 98년 7월이었다. 책을 손에 넣은 지 25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소불笑佛 정양모(鄭良謨, 1934- )는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37년간 박물관에 몸을 담은 미술사학자였다. 그는 도자사 연구를 개척한 국내 도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원로학자였다. 1장. 조선미술 개론 4편, 2장. 조선그림 3편, 3장. 이 땅의 도자사 14편, 명품 도자기 9편, 5장. 박물관・문화정책에 관한 에세이 14편의 글이 실렸다. 표지그림은 18세기 전반 김두량의 〈흑구도黑拘圖〉, 크기는 23.0x26.3㎝, 종이에 수묵으로 그렸다. 책에 실린 도판은 93점이었다.
‘예술은 그 나라의 자연과 시대를 반영한다. 한국인은 자연에서 절대 불변하는 내재적 원칙과 가변하는 자연의 외형적 변화를 터득하여 이 두 가지 요소를 한국 예술의 근간’(47쪽)으로 삼았다. 1장 ‘우리 미술의 이해’는 조선회화・도자, 18세기 문예부흥기, 조선 전기의 화론을 다루었다. 선초의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로 청자와 같이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하고 그 위에 회청색의 유약이 시유된 사기를 가리켰다.
2장 ‘우리 그림 이야기’는 겸재와 단원, 미공개 회화 이야기였다.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과 본질을 화폭에 옮겼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이 지닌 뜻까지도 그림에 담아냈다. 단원 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한국적 이념산수로 겸재가 이룩해 놓은 풋풋한 진경산수화를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한국화의 정형定型을 완성했다.
3장 ‘흙과 나무와 물과 바람의 조화’는 이 땅의 도자사였다. 중국 청자의 백미는 북송北宋 휘종 때의 여관요汝官窯 청자였다. 우리 비색翡色 청자의 으뜸은 고려 인종 때 였다. 12세기 전반의 이 두 계열 청자는 세계 도자사상 가장 위대한 금자탑이었다. 일본 다도의 완성자는 센노 리큐(千利休, 1522-91)는 찻잔의 으뜸으로 고려다완을 꼽았다. 일본 사이도쿠지(大德寺)가 소장하고 있는 일본 국보 ‘기자에몬(喜左衛門)’ 이도다완은 16세기 경남 지방에서 만든 막사발이었다. 고려 양이정養怡亭 지붕을 덮은 청기와,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 분청사기・오지그릇・질그릇・옹기・장독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4장 ‘도자 명품 감상 10선’은 은은한 백토역상감의 〈청자상감모란당초문매병〉, 너그럽고 넉넉한 큰 멋의 〈백자달항아리〉, 억지로 잘 보이려는 흔적이 없는 〈분청사기철화어문병〉, 잘생긴 입호立壺 형태에 뛰어난 그림 장식을 갖춘 명품 〈청화백자동채연화문항아리〉, 백자의 피부가 아름답고 문양이 간결하고 신선한 〈청화백자 ‘망우대’명국화문접시〉, 높이 53.8㎝의 크고 잘생긴 항아리 〈백자철화포도문대호〉, 다갈색의 끈 문양이 눈길을 끄는 의젓한 〈백자철화수뉴문병〉, 휘적휘적 붓 가는 대로 그려낸 것 같아서 깊은 맛의 〈백자동화포도문항아리〉, 생동감이 넘치는 풍만한 양감의 〈분청사기인화승렴문장군〉, 절제와 과장, 회화성과 장식성이 절절하게 결합된 〈분청사기철화연화어문병〉, 너그럽고 대범하고 익살스러운 〈분청사기조화수조문편병〉.
5장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는 저자가 우리 미술의 미학으로 내세우는 표제글 「너그러움과 해학」, 조선시대 문방제구, 성덕대왕신종, 개발바람에 파헤쳐지는 문화유적지, 문화재 도굴, 경복궁 복원, 신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직 등 문화정책에 관한 시평이었다. 조선 백자를 자세히 보면 몸통은 좌우대칭이 아닌 한쪽이 일그러진 불완전・불균형의 모양새였다. 조선의 도공은 이를 버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꺼워하며 곁에 두고 사용했다. 너그러움이었다. 선초의 분청사기에 나타난 문양의 대담함은 재치가 번득이고 익살스러웠다. 해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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