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길에서 쓴 그림일기
지은이 : 이호신
펴낸곳 : 현암사
내가 처음 만난 한국화가 현석玄石 이호신(李鎬信, 1957- )의 책은 생명의 외경과 삶의 본질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숲을 그리는 마음』(학고재, 1998)이었다. 그 시절 나는 출판사 《학고재》의 책은 무조건 손에 넣었다. 책장에서 어깨를 겨누는 화가의 책은 이 땅의 산사를 현지답사하며 글과 그림에 담은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해들누리, 2001), 동아프리카 여정을 그린 수묵화 『쇠똥마을 가는 길』(열림원, 2002), 전남 영암의 역사, 풍습, 생활문화 순례 『달이 솟는 산마을』(현암사, 2004), 전통마을의 문화, 자연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학고재, 2007) 였다.
『길에서 쓴 그림일기』(1997)는 화가가 10여 년 동안 우리 땅 곳곳을 찾아다닌 진솔하고 감동적인 그림기행으로 화가의 첫 책이었다. 그의 글맛에 빠져 든 나는 품절된 책을 손에 넣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후배가 한살림 회원으로 오미자 농사를 지었던 경남 함양 덕유산 자락의 오두막에서 책을 만났다. 책에 대한 편집증적 강박증이 유다른 나는 책을 탐냈다. 후배가 책을 건네면서 말했다. “절대 책을 주지 않았는데 형이니까” 책은 덕유산 산골에서 서해 작은 외딴섬으로 건너왔다.
표지그림은 〈만남〉으로 42x28㎝, 1996作이었다. 책에 실린 그림은 300여 점에 달했다. 해설은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탑 쌓기의 성심과 비움의 세계」, 표사는 화가 권기윤, 김선두, 시인 박희진이 부조를 했다. 본문은 3부에 나뉘어 28편의 글이 실렸다.
1부. ‘길에서 만난 풍경’은 이 땅 사람들 삶의 풍경이었다. 임실 진메마을의 섬진강 시인 김용택, 광양 청매실 농장의 홍싸리 아주머니. 정선 단임골의 북한 귀순용사 리영광씨. 아우라지강의 ‘정선 아라리’ 기능보유자 김남기 선생・김병하 씨. 고창・부안의 남도 대보름 당산제, 전통한지 지선암의 영담影潭 스님, 경북 영덕 도계한지・전남 남원 한지마을. 차茶, 옹기, 전통염색을 재현한 보성 벌교 금화산 징광의 한상훈 선생. 조선 전통 한옥 건축의 원형 경북 경주 설창산자락 양동마을. 철조망 위의 보름달 동해안 비무장지대, 분단의 땅 철원, 가야산 해인사 성철性徹 스님의 다비식. 진도 영등축제.
2부. ‘아름다운 자연, 생명의 노래’는 자연 생태기행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생태기행〉의 우포늪. 찬서리가 내린 늦가을 조계산 선암사의 차꽃 축제. 〈한국자생식물연구회〉와 함께 한 10여 년 세월의 자생식물 보호와 생태조사, 매물도 기행. 낙동강 을숙도・창원 주남저수지의 겨울철새 조류탐사. 강원 홍천 공작산의 곤충탐사. 〈두레생태기행〉과 함께 한 경기 화성 남양만 조암 갯벌탐사. 경주 계림・나정・선덕여왕릉 길목・여근곡 숲・시골마을의 소나무를 그리는 마음.
3부. ‘땅의 숨결과 문화의 향기’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성찰을 담은 문화답사 기행이었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보길도甫吉島 부용동芙蓉洞 원림.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의 관동팔경 - 고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 정자亭子와 가사문학歌辭文學의 산실 전남 담양의 별서정원. 우리 옛 그림의 시점 - 공중 부감俯瞰으로 그린 운주사雲住寺 천불천탑千佛千塔. 자연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문화유산을 품은 고도古都 경주 남산. 화가의 고향 영해와 동해구東海口.
미술평론가는 한국화가를 ‘우리 산하에 대한 속 깊은 사랑과 우리 문화에 대한 유다른 애정······. 자신의 문화와 삶, 믿음과 예술을 일치시키려 노력해 온 예술가’라고 추켜세웠다. 책장을 넘기다 나는 여기서 눈길이 머물렀다. 내가 화가를 처음 접한 책의 표지그림이었다. 〈생사生死의 노래〉는 38x23㎝ 크기, 1996년 作이었다. 태백산에서 만난 고사목의 뻥 뚫린 줄기에 자리잡고 생명의 꽃을 피운 노루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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