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대빈창 2022. 11. 11. 07:30

 

책이름 :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동녘

 

대중철학자 강신주(姜信珠,  1967- )는 사람은 몸을 가진 존재이기에 서로 만나 접촉해야 관계가 형성된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대중강연을 활발하게 해왔다.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라는 카피를 단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2011)은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동녘, 2010)의 후속편이었다. 홍대 근처 《상상마당》에서 연 ‘철학과 놀기’ 13기 강좌가 토대가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43)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떠올리고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을 인용했다. 철학자는 ‘위대한 시인이나 철학자의 글을 읽기가 힘든 것은 그들이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것을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 chapter는 사랑, 돈, 그리스도, 타자, 자유, 대중문화, 글쓰기, 관계 등 우리들의 삶과 밀착되는 주제들을 다루었다.  14명의 시인과 철학자를 짝지어 현대철학자의 사상을 접목시켜 철학적으로 시를 읽어냈다.

이성복(李晟馥, 1952- )의 「앞날」은 사랑의 관계가 요구하는 딜레마에 빠진 시인의 숙고,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세미나 20』에서 남성을 지배하는 강박증, 여성을 지배하는 히스테리 신경증이 대부분의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승호(崔承鎬, 1954- )의 「자동판매기」는 자신을 길들인 대도시와 산업자본의 힘을 성찰하고, 짐멜(Georg Simmel, 1958-1918)은 『짐멜의 문화론』에서 자본주의에서 한 공간에 노동자와 소비자가 모여 있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대도시가 발달했다.

문정희(文貞姬, 1947- )의 「유방」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통찰, 뤼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 1947- )는 『나, 너, 우리-차이의 문화를 위하여』는 여성적 문화란 차이를 견디는 문화, 타자를 포용하는 문화라고 했다. 고정희(高靜熙, 1948-1991)의 「밥과 자본주의-우리 시대의 산상수훈」은 예수의 사랑이 이 땅에서 진정으로 실현되기를 원했고,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는 억압받는 이웃 노동자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불태우다 서른네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여성 철학자였다.

김행숙(金幸淑, 1970- )의 「포옹」은 촉각적 자아의 사랑을 명확히 보여 주었고, 바흐친(Mikhail Mikhailovich Bakhtin, 1895-1975)은 『말의 미학』에서 우리 자신은 타자가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성을 가진 존재라고 했다. 채호기(蔡好基 , 1957- )의 「애인이 애인의 전화를 기다릴 때」는 연인 사이에서 오고가는 전화 매체에 대한 성찰,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우리 삶과 매체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포착한 사상가였다.

신동엽(申東曄, 1930-1969)의 「진달래 山川」은 억압을 찢어발긴 자유로운 삶을 꿈꾼 빨치산을 그렸고,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 1934-1977)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에서 국가의 형성은 억압과 지배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행복」은 사랑이 순수한 열정과 격정으로 극한에 이르는 상태를, 사랑을 통해서 타자에 대한 감각에 접근해 들어간 『사랑의 단상』의 스타일리스트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

김정환(金正煥. 1954- )의 「스테카라친」은 러시아 차르tsar 체제에서 억압받는 농민 해방 투쟁에 나선 혁명가 스테카라친(Stenka Razin, 1630-1671)을 노래했고,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에서 인간은 현실에 적응하는 수동적 존재일 뿐 아니라, 동시에 현실을 개조하는 능동적 존재로 보았다. 백석(白石, 1912-1995)의 「통영統營」은 첫사랑을 그리며 통영을 찾은 시인의 행각을 그렸고, 나카무라 유지로(中村雄二郞, 1925- )는 『공통감각론』에서 체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인간이 가진 감각들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종삼(金宗三, 1921-1984)의 「원정園丁」은 글을 쓰는 자신의 운명을 포착한 시인의 감수성을,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는 『문학의 공간』에서 인간이란 바깥(죽음)과 직면할 때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이해했다. 함민복(咸敏復 , 1962- )의 「우울氏(씨)의 一日(일일) 10」은 자본주의 체계에 포획된 인간의 우울한 삶을, 기-드보르(Guy-Ernst Debord, 1931-1994)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구경거리가 넘쳐나는 사회로 타인은 물론 자신의 삶도 돌볼 여지를 빼앗아버리는 사회를 지적했다.

황병승(黃炳承, 1970-2019)의 「트랙과 들판과 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가치로 휘청거리는 인간 군상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잡았고,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중심을 해체했을 때 드러나는 삶의 풍경을 예민하게 주시했던 철학자였다. 허연(許然, 1966- )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는 정직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시인의 각오,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때 한계에 직면할 것이고, 나아가 한계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뛰어넘어야 하는 존재라고 했다.

에필로그에서 철학자는 고교시절 지리산 등반종주를 하며 부딪힌 두 번의 강렬할 경험을 소개했다. 폭포의 소에 빠져 죽음의 공포 속에 보았던 지리산의 푸른 하늘, 세석평전에 쏟아져 내렸던 은하수의 장관이었다. 그 경험은 후에 김수영의 「폭포」와 조정권(趙鼎權, 1949- )의 『산정묘지』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조정권의 「독락당獨樂堂」(318쪽)의 전문이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 / 벼랑 꼭대기에 있지만 / 예부터 그리로 오르는 길이 없다. / 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 / 내려오는 길을 부숴버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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