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지은이 : 자카리아 무함마드
옮긴이 : 오수연
펴낸곳 : 강
나는 3주에 한 번 강화도에 발걸음을 했다. 도서관 대여도서 반납기간이 3주였다. 아침배로 나가 도서관에 들르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고 1시배로 섬에 돌아왔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빌릴 책을 찾았다. 새로 문을 연 도서관의 검색창에 ‘시집’을 때렸다. 표제가 긴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자카리아 무함마드(Zakaria Mohammad)는 1950년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태어나 이라크 바그다드 대학 아랍문학과를 졸업했다. 가난한 시인이 유학 중 귀국날짜가 이틀 늦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점령군은 국경을 닫아걸었다. 그는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등을 떠돌다 1993년 오슬로 협정에 즈음하여 25년 만에 긴 망명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인은 첫 시집 『마지막 시들』(1981)이후 지금까지 여덟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팔레스타인의 국민시인・아랍을 대표하는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를 기리는 〈마흐무드 다르위시 상〉을 2020년 수상했다. 시인은 첫 시집부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고발하는 글을 발표해 왔다.
시인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팔레스타인 작가 9명이 쓴 산문모음집 『팔레스타인의 눈물』(아시아, 2006)에서 시인의 산문 「취한 새」, 「귀환」을 읽었다. 산문집과 시집 모두 옮긴이가 소설가 오수연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전쟁을 반대하고 실상을 기록할 자원자를 물색했고 오수연이 나섰다. 작가는 2005년 시민단체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를 결성했고, 한국과 팔레스타인 문인들의 교류를 이끌었다.
옮긴이는 시인 자카리아에게 여덟 권의 시집에서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시를 직접 뽑아달라고 요청했다. 시인은 200편의 시를 추천했고, 우리의 감성에 호소력 있는 시들을 작가가 추려냈다. 자카리아의 시들은 대개 제목이 없어, 시의 첫 행으로 제목을 삼았다. 그렇게 81 시편과 짧은 시 13편, 그리고 산문 「시와 토마토」, 「연꽃 먹는 사람들」을 실었다. 발문은 정수일(문명교류학자)의 「이제는 ‘귀향의 시’를」, 표사는 시인 나희덕이 부조했다.
옮긴이는 후기 「바위에 새긴 말」에서 “인간과 인간 사회를 떠받친다고 믿어졌던 원칙들이 무너질 때, 현실이 너무 무도해서 그런 것들은 말짱 다 거짓말처럼 보일 때, 그때도 그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카리아 무함마드가 시를 짓고 있는 것”(186쪽)에 고마워했다. 마지막은 「재갈」(90-91쪽)의 전문이다.
소년은 보았다. / 검정말 / 이마에 흰 별 찍힌 / 검정말은 /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 한 발을 땅에서 들었다. / 이글대는 태양 아래 / 초원은 짙푸르고 / 말의 앞 갈기 아래 / 별은 하얗게 타올랐다. / 말에게 굴레는 없고 / 입에 재갈도 물려 있지 않았다. / 그런데도 말은 씹고 / 또 씹었다. / 머리를 채면서 / 입술에서 뜨거운 피가 / 흘러내리도록. / 소년은 놀랐다. / 검정말이 뭘 씹고 있는 거지? / 혼잣말로 물었다. / 뭘 씹지? / 검정말은 씹고 있다. / 기억의 재갈을 / 녹슬지 않는 강철로 만들어져 / 씹고 또 씹어야 할 / 죽을 때까지 / 씹어야 할 / 기억의 재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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