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지은이 : 최성일
펴낸곳 : 연암서가
군립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검색창에 ‘최성일’을 입력했다. 네 권의 책이 떠올랐다. 『베스트셀러 죽이기』,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한 권의 책』,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마음이 부풀었고, 나는 우선 두 권을 대여했다. 스스로 글을 쓰는 기술자라고 했던 작가의 첫 책과 사후에 발간된 책이었다. 언제였던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나의 레이더망에 포섭된 책이었다. 그때 품절로 아쉬움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작가 최성각의 산문집 『나무가 없는 하늘』에서 출판평론가 최성일(1967-2011)을 다시 만났다. 글은 중환자실의 출판평론가를 면회하고 끝내 장례를 치르면서 그의 삶을 회고했다. 소설가는 후배의 사정이 너무 안타까웠다. 출간되지 않은 글을 주변인들이 엮은 책이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였다.
저자는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출판저널』 기자로 여러 지면에 북 리뷰와 시평을 활발하게 기고했다. 책은 2008년부터 출판전문지 『기획회의』에 연재되었던 과학책에 대한 촌평 내지 감상문을 묶었다. 글은 과학자의 자서전・전기・평전, 과학의 역사적 고전과 현대 고전, 과학의 특정 분야의 이슈를 다룬 책, 그외 수학과 의학에 관한 글이었다. 첫 꼭지 윌리엄 파운스톤(William Poundstone)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 1934-1996)의 평전 『칼 세이건 코스모스를 향한 열정』에서, 마지막 꼭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1960년대 세 번의 연속강연 모음집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까지 39편의 글을 엮었다.
근・현대 천문과학의 태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li, 1564-1642)의 천문노트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R. Oppenheimer, 1904-1967), 찰스 다윈이후 가장 잘 알려진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의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다윈 이후』,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 )의 유전자결정론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생명의 미래』, 양자역학과 양자 물리학을 낳은 양자이론의 막스 플랑크(Max Plank, 1858-1947). ‘불확정성원리’의 양자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대화체 자서전 『부분과 전체』.
저자의 첫 과학책은 아버지가 청계천 헌책방에서 사다 준 48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12권의 『소년소녀발명발견 과학전집』이었다. 한국인 저자는 장하나・김형자・예병일・유병용, 중국과학기술사학자 아이우싼(戴吾三)의 『고사성어 속 과학』, 뇌와 음악의 연관성을 다룬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 )의 『뮤지코필리아』, 매리언 캔들의 면역학을 다룬 『세포전쟁』, 지구온난화 희의론자 마크 마슬린의 『기후변화와 정치경제학』 등.
39 꼭지의 소제목에서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이었다. 다행히 출판평론가가 “위대한 책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책일 것이다”(146쪽)란 문장으로 끝을 맺은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였다. 책 말미에 붙은 본문에 등장하는 〈함께 읽을 책〉 60권 중에 몇 권의 책이 나의 손을 탔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겠다. 『다윈 이후』 서평의 한 구절이 오래 귓전에 남았다. “다윈이 아주 부유한 의사의 아들이 아니라 어느 장사꾼의 자손이었다면 오늘날의 생물학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하게 된다.”(78쪽)
‘번개가 많이 치는 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확실했다. 번개는 질소를 질산으로 고정시킨다. 번개가 만들어내는 질산의 한 해 량은 10억 톤이라고 한다. 번개에 의해 고정된 질소는 비를 타고 지표로 스며들어 토양에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했다. 마지막은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명언(252쪽)으로 끝을 맺는다.
“과학의 새로운 진리는 상대편을 설득하고 계몽시킴으로써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편이 점차 사라지고, 자라나는 세대가 처음부터 진리를 잘 알고 있음으로써 관철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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