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베스트셀러 죽이기
지은이 : 최성일
펴낸곳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1. 7. 2. 출판칼럼니스트 최성일이 세상을 떠났다. 나이 44세였다. 그는 1990년대 ‘전문가 서평 시대’를 연 1세대 출판평론가였다. 책과 출판에 관한 담론을 단행본으로 엮어내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2001년 펴낸 『베스트셀러 죽이기』는 최성일의 첫 책이었다. 독서정보지 〈책과 인생〉에 연재한 칼럼을 묶었다. 헌사가 “사랑하는 내 딸 서해에게”였다. 한 해전 저자는 첫 딸을 보았다. 책은 90년대 베스트셀러에 대한 여러 신문・잡지 기사와 평가를 분석하고 저자의 의견을 담았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이문열의 『선택』 / 김정현의 『아버지』 / 강준만의 『김대중 죽이기』 / 기든스(A. Giddens)의 『제3의 길』 / 마광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정주영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조정래의 『태백산맥』 /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
차례의 13챕터 14권의 베스트셀러다. 네가 읽은 책은 고작 세 권이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른, 잔치는 끝났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둘째 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시점의 통계수치에 주목했다. 그때 한국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7백만 대를 돌파했다. 이중 자가용의 비중이 93.5%였다. 책에 소개된 문화유적은 자가용이나 관광버스를 대절하지 않고는 쉽게 갈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서산의 상왕산 개심사를 가기 위해 해미읍성에서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 시인・문학평론가 김정란은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최영미 문학에서 문제삼는 것은 이 시인이 여성성의 문제에서도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겁니다. 그녀는 남성으로부터 독립한 여성이 전혀 아녜요. 여전히 남성에게 사랑해 달라고 애걸하고 있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의 이름으로 공적인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요.”
최준식(이화여대 한국학)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이케하라 마모루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중앙M&B)과 함께 언급하면서 표제의 판매지상주의(?)에 딴지를 걸었다. 일본 상인 이케하루의 선정적인 책 제목은 괜찮지만 교수는 안된다는 것이다. 출판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상인과 교수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재벌 총수의 자서전으로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영사, 1989)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주영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제삼기획, 1991)는 기억에 없다. 이성태의 『위대한 기업가와 가난한 철학』(민맥, 1991)은 ‘시련’에 대한 비판 책이었고, 박노해의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노동문학사, 1989)는 ‘할 일’의 전면비판서였다. 나는 박노해 책의 인용글로 이 땅의 대표 자본가의 글을 맛보았다. 그 시절 나는 안산공단 노동자였다. 공단도시의 길거리를 오가는 노동자들의 손에 하나같이 재벌총수의 부피 얇은 에세이가 들려있었다.
조선후기 문장가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癡라고 불렀다. 즉 ‘책만 보는 바보’였다. 최성일은 가난했지만 진정한 애서가로 이 시대의 간서치였다고 한다. 그의 순수한 영혼과 진지한 삶의 자세는 지금도 책을 잡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아웃사이더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던 출판칼럼니스트는 근본적 생태주의자로 『녹색평론』의 열렬한 독자였다. 그의 지론은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가난한 삶’이었다. 안타깝게 녹색평론이 휴간에 들어갔다. 고인의 대표작은 국내외 대표 사상가의 책과 세계를 정리한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다. 원래 다섯 권이었던 책을 선배 출판평론가 한기호가 투병중인 그를 돕기 위해 한 권으로 다시 묶어 펴낸 책이었다. 그 책을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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