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지은이 : 이호신
펴낸곳 : 해들누리
20여 년 저쪽 나는 한국화가 이호신(李鎬信, 1957- )의 책을 즐겨 잡았다. 책장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책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는 화가가 우리 국토의 산사山寺를 기행하며 그림과 글로 엮은 그림기행이었다. 도서출판 《해들누리》는 2002. 9. 개정판을 냈다. 책 욕심이 유다른 내가 다시 펼친 책은 2001. 3. 초판본이었다. 책의 구성은 첫 편 ‘경주 남산 불교유적’외 40개 사찰을 사전 순서로 실었다.
경주 남산 불교유적 / 용당산 감은사지 / 상왕산 개심사 / 치악산 구룡사 / 함월산 기림사 / 오봉산 낙산사 / 능가산 내소사 / 성흥산 대조사 / 태화산 마곡사 / 월출산 무위사 / 달마산 미황사 / 만덕산 백련사 / 백암산 백양사 / 금정산 범어사 / 금산 보리암 / 보련산 보탑사 / 희양산 봉암사 / 천등산 봉정사 / 봉황산 부석사 / 토함산 불국사 / 천축산 불영사 / 두타산 삼화사 / 토함산 석굴암 / 조계산 선암사 / 덕숭산 수덕사 / 봉미산 신륵사 / 삼신산 쌍계사 / 천태산 영국사 / 운제산 오어사 / 호거산 운문사 / 영귀산 운주사 / 오대산 월정사 / 칠갑산 장곡사 / 오대산 적멸보궁 / 마니산 정수사 / 태백산 정암사 / 황악산 직지사 / 청량산 청량사 / 동리산 태안사 / 가야산 해인사 / 지리산 화엄사
내가 서해의 외딴 섬에 둥지를 튼 지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은 섬에 웅크려 두문불출하지만 젊은 한때 나는 륙색을 메고 이 땅의 절집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 차례의 절집을 손으로 꼽아보니 대략 반수에 나의 발걸음이 미쳤다. 화가가 ‘가람伽藍의 진경眞景’을 그리고자 땀을 흘린 데는 ‘우리 가람이 산수山水와 조화를 이룬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대자연과 고건축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요, 항상 살아 숨 쉬는 겨레의 유산’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마다 화가는 수많은 사찰이 창건의지를 잃고, 중창불사라는 미명아래 훼손되는 현장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근래 세운 구룡사의 삼층석탑은 너무 커서 시각적인 혼선과 가람배치에 반감을 주고, 기림사의 세기말의 불사는 초행자들이 본당을 찾는데 혼동을 일으켰다. 낙산사의 보타락寶陀洛과 보타전寶陀殿은 산세와 지형에 비해 너무 크고, 내소사의 봉래루蓬萊樓는 예전보다 기둥을 들어 올려 주봉과 대웅보전을 잇는 동선의 연속성을 흩트렸다. 대조사에서는 문명의 혜택이 오히려 자연 친화를 거스르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범어사 입구의 석불이나 당우의 화려하고 지나친 치장이 낯설었다. 봉정사의 주차편의를 위한 거대한 주차장은 그윽한 산문山門을 만끽하는 기쁨을 빼앗고, 무릉계곡의 삼화사는 시멘트공장의 채광권으로 가람을 이전했다. 수덕사의 한겨울 불사가 누누이 지적된 가람배치와 치장을 덜어내기를 고대하고, 신륵사 입구 기념품 상가와 보트장의 스피커 소음은 절의 풍광을 유원지화시켰다. 정수사의 근자에 자리한 삼층석탑은 공간에 비해 너무 크고, 청량사의 사리탑 자리에 앉힌 오층석탑도 가람 규모에 비해 너무 컸다.
추천의 글을 통해, 강우방(미술사가)은 「謙齋와 檀園의 脈을 잇는 玄石」에서 “(화가는) 求道者의 자세로 山寺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과 고귀한 정신과 숭고한 예술의 본질을 탐색하며 진리"(434쪽)를 구하고 있다고 했으며, 최창조(풍수학자)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수고(登涉之勞)의 산사 그림」에서 ”(화가의) 산사 그림은 소위 말하는 명당, 길지 같은 것이 아니라, 대자연과 그 위대한 어머니 품에 안긴 산사가 극도의 조화“(441쪽)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중과 공자 (0) | 2022.12.13 |
---|---|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0) | 2022.12.12 |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 (0) | 2022.12.07 |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0) | 2022.12.06 |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 (0) | 2022.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