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대빈창 2022. 12. 15. 07:30

 

책이름 :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지은이 : 김혜리

펴낸곳 : 어크로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는 아쉬웠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책을 이제 잡다니.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2017)는 10년 만에 나온 영화에세이였다. 내가 저자를 알게 된 것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추천사」를 어디선가 눈동냥하고 부터였다.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잘 쓴 글들이 많지만 김혜리의 글이 내게는 주관적으로 그렇다.······. 나는 그냥 잘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

문인들이 글을 받고 싶어 하는 일순위의 문학평론가가 추켜세우는 작가가 궁금했다. 저자는 그동안 『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강, 2007) / 『영화를 멈추다: 서른 편의 영화, 서른 개의 장면』(한국영상자료원, 2008) / 『그녀에게 말하다-김혜리가 만난 사람』(씨네21북스, 2008) / 『진심의 탐닉-김혜리가 만난 크리에이티브 리더 22인(씨네21북스, 2010) / 『그림과 그림자』(앨리스, 2011) 등 총 여섯 권의 책을 냈다.

글들은 2014 - 2017년 1월까지 〈씨네21〉에 실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서 선별한 글을 영화 관람 기준으로 열두 달 차례로 편성했다. 매월 주제로 붙인 제목들에 첫 편 〈와일드〉에서 마지막 편 〈노 홈 무비〉까지 40편의 글이 나뉘어 실렸다. 영화의 밀도와 미덕을 지적이고, 시적인 자세로 이야기한다는 저자의 글은 막히지 않고 쉽게 읽혔다. 40편에서 내가 본 영화는 〈비밀은 없다〉 단 한편이었다. 그것도 데스크 탑의 모니터를 통해서였다. 나는 잘 쓰는 영화평론보다 저자의 사유에 마음이 끌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해친다는 말이 아니라 타인의 삶이 어찌되든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로 변했다.(33쪽)

그만큼 미국 노예제도가 인류사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비해 대중영화의 소재로 선택된 빈도가 낮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이 초래한 고통과 죽음의 부피라든가, 인간의 도덕적 감수성이 정치・경제적 필요 앞에서 얼마나 마비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서의 의미(89쪽)

기억이란 불러낼 때마다 원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회상한 버전을 재구성한 결과라고 한다.(137쪽)

개인이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는 상태는 당사자의 의지와 태도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희망과 의욕의 토양이다.(294쪽)

나는 문득 이해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휴식할 수 없는 영혼들이 스크린에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하는 이유를.(341쪽)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극장의 어둠속에 앉아있는 동안이 내 삶에서 가장 감각이 활성화되고 다수의 타인을 공정하게 판단하고자 노력하고, 세계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낱낱이 실감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사태는 역전됐다. ······.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살아있다고, 내가 잠시 더 나은 인간이 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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