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대빈창 2022. 12. 19. 07:30

 

책이름 :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지은이 : 진은영

펴내곳 : 문학과지성사

 

시인 진은영(1970 - )은 2000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철학자로 『순수이성 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그린비, 2004),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그린비, 2007)과 산문집 『시시하다』(예담, 2016) 그리고 시집은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문학과지성사, 2003) / 『우리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사, 2008) / 『훔쳐가는 노래』(창비, 2012)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 2022) 등 많은 책을 출간했다.

그렇다. 첫 시집의 표제가 오랜 기간 나의 뇌리에 잠재되어 있었다. 요즘 들어, 새로 문을 연 도서관 《지혜의 숲》에서 시집을 한두 권 대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손에 집어든 시집이었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46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내게서 먼, 긴 손가락」이었다. 각 부에 제사題詞가 실렸다. 1부,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는 파라 - 자, 밤은 길고 자신을 평가하는 모든 시인은 자신의 고유한 사전을 가져야만 한다 / 2부, ‘청춘’은 아라공 - 어느 즐거운 저녁, 미래는 과거라 불리고, 그때 우리는 돌아서서 자신의 청춘을 본다 / 3부, ‘바깥 풍경’은 릴케 - 오 삶이여, 삶 그것은 바깥에 있다는 것, 활활 타는 불꽃 속의 나 나를 아는 자 아무도 없다.

표제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단어장에 기술된 봄-슬픔-자본주의-문학-시인의 독백-혁명-시에 대한 시인의 낱말풀이였다.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가 떠 올려지는 두 편의 시는「카프카의 연인」의 밀레나, 「벌레가 되었습니다」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하는 〈변신〉. 시집의 두 번째 시 「고흐」(12-13쪽)의 전문이다.

 

왼쪽 귓속에서 온 세상의 개들이 짖었기 때문에 / 동생 테오가 물어뜯기며 비명을 질렀기 때문에 / 나는 귀를 잘라버렸다 // 손에 쥔 칼날 끝에서 / 빨간 버찌가 / 텅 빈 유화지 위로 떨어진다 // 한 개의 귀만 남았을 때 / 들을 수 있었다 / 밤하늘에 얼마나 별이 빛나고 / 사이프러스 나무 위로 색깔들이 얼마나 메아리치는지 // 왼쪽 귀에서 세계가 지르는 비명을 듣느라 / 오른쪽 귓속에서 울리는 피의 휘파람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 커다란 귀를 잘라 / 바람 소리 요란한 밀밭에 던져버렸다 / 살점을 뜯으러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 두 귀를 다 자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 멍청한 표정으로 내 자화상을 바라본다

 

나는 위 시를 읽어 나가며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세 작품을 떠올렸다. 1889년작 〈귀를 붕대로 감은 자화상〉, 1880년작 〈별이 빛나는 밤에〉, 1890년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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