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지은이 : 최성일
펴낸곳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출판칼럼리스트 故 최성일(1967-2011)은 한창나이인 44세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투병 중이던 후배를 위해, 그가 평생을 기울여 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을 한 권으로 모아 새 책을 내었다. 책은 저자의 13년간 독서 이력이 고스란히 담긴 5권짜리 사상가 리뷰 책을, 800쪽의 단 권으로 재편집했다. 책 말미에 다섯 권의 「머리말」이 첨부되었다.
1997년 - 2010년까지 12년 5개월 동안 펴낸 다섯 권은 20-21세기 사상가들의 저서와 번역서에 대한 인문주의자 최성일의 책 리뷰였다. 다섯 권을 합쳐 한 권으로 묶었고, 새로운 리뷰 10편을 보태 모두 215편이 되었다. 파트너십의 저자 두 명을 함께 다룬 리뷰도 포함되어 등장인물은 모두 208명이었다. 본문에 언급된 책만 1,800권이 넘었다. 사상가와 번역가, 관련 도서의 인물을 쉽게 찾게 「책명 찾아보기」와 「인명 찾아보기」에 꼼꼼함이 묻어났다.
일본 문예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을 시작으로, 일본 여행가 후지와라 신야(藤原新也, 1944 - )로 끝을 맺은 208명의 인물은 철학자, 역사학자, 정치학자, 예술가 등 다양했다. 이 가운데 한국인은 고종석, 김기협, 김민기, 김산, 리영희, 박노자, 백무산, 서경식, 신순옥, 우석훈까지 10명이었다. 고종석(高宗錫, 1959 - )은 인문학자・소설가・기자・언어학자・번역가・정치평론인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쓰는, 출판계에서 ‘아주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통했다.
역사평론가 김기협(金基協, 1950 - )은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역사에세이 『뉴라이트 비판』, 『밖에서 본 한국사』에서 국가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을 구분하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가수 김민기(金敏基, 1951 - )는 1972년 여름 마산수출공단 노동자들과 바닷가로 야유회를 갔다. 석양아래 하나둘 포구로 돌아오는 배를 보며 그는 무심코 “야! 참 멋있는데?”하고 중얼거렸다. 그때 옆자리의 여공이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 사람들은 모두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예요. 뭐가 멋있다는 거지요?” 그는 ‘난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이 체험은 자신의 감정적 기반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겪는 결정적이 계기가 되었다.
혁명가 김산(金山, 1905-1938)은 본명이 장지락張志樂으로,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은 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였다. 우리 시대 ‘사상의 은사’ 리영희(李泳禧, 1929-2010) 선생은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한 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정세판단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인의 최고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리영희의 삶이 곧 한국현대사’라고 했던 이는 강준만이었다.
귀화인 박노자(朴露子, 1973 - )는 한국어 구사력이 적확했다. 이 땅에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렇게 비꼬았다. 곰을 ‘밀림의 주인’으로 부르면 참 멋지게 들리듯이 3공과 5공 출신의 극우관료군과 재벌가들을 ‘산업화 세력’으로, 자신의 운동 경력을 팔아 우파 진영에 편승한 중산계급, 귀족대학 출신의 정객들을 ‘민주화 세력’으로 부르면 참 멋져 보이는 모양이다.
노동자 시인 백무산(白無産, 1955 - )의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청사, 1988)는 제1회 이산怡山 김광섭金光燮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남루한 단색 점퍼 차림의 시인은 수상소감으로 노동해방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노동자 동지들과 노동해방 가요를 힘차게 합창했다. 자유주의적 문인과 교수로 가득 찬 식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서늘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에피소드는 언제 들어도 통쾌했다.
재일조선인 지식인 서경식(徐慶植, 1951 - )은 〈재일유학생 간첩단사건〉의 두 형 서승과 서준식의 옥중서신을 잡으며 알게 되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시작으로 20여권의 책이 나의 손에 들렸다. 신숙옥(辛淑玉, 1959 - )은 재일조선인 인권운동가로 일본의 보수 진영에 당당히 맞선 논객이었다. 우석훈(禹晳熏, 1968 - )은 자칭 C급 경제학자다. 그의 대표작 『88만원 세대』에 손이 미치지 못했다. 수포자지만 내가 첫 손에 꼽는 한국의 대표 경제학자였다. 『직선들의 대한민국』, 『괴물의 탄생』을 잡았다. 군립도서관에 세 권의 책을 희망도서로 주문했다.
저자의 리뷰 대상으로 국내 저자가 인색한 것은 이름이 높을 수록 신뢰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땅 언론의 인물관련 보도와 인물평은 믿을 게 못되었다. 자사自社의 이해관계에 따라 뻥튀기하기가 일쑤였고, 언론사의 이익과 맞서는 인물을 아예 무시하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언론사든 예외가 없었다. 출판칼럼리스트는 박람강기博覽强記가 빛나는 ‘사상의 사전’을 펴낸면서 “독자들이 흠모할 만한 인물을 소개하는 길라잡이 구실을 하는 일이 즐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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