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2170년 12월 23일
지은이 : 성윤석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을 열면 |시인의 말|부터 눈에 들어온다. ‘한 권이면 족하지 했는데 다시 시집을 묶는다.······. 내내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불편해서 겨우 서 있는 듯한 문장만이 내 곁에 있을 것이다.’ 시인은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문학과지성사, 1996), 『공중 묘지』(민음사, 2007), 『멍게』(문학과지성사, 2014), 『밤의 화학식』(중앙부스, 2016)에 이어 『2170년 12월 23일』은 다섯 번째 시집이었다. 나는 바다와 섬에 대한 詩를 찾다가,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을 만났다. 시인의 사업이 망하고, 마산항의 부두노동자 시절에 쓴 시편들이었다. 그리고 네다섯 번째 시집을 연이어 잡았다.
시인의 비틀리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연민어린 시선에 끌렸을 것이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67편이 실렸다. 3부를 열면, 제목이 「검은 개인」으로 같은 시가 5편, 「이후의 극장」 4편이 연이어 실렸다. 해설은 김대산(문학평론가)의 「검은 개인이란 무엇인가 - 카오스를 찾아서」였다. - 비천하기도 하고 고귀하기도 하며, 절망적이면서도 희망적인 기다림 속에 있는 “검은 개인”의 근본 느낌은 ‘부끄러움’과 ‘슬픔’이다. -(154쪽)라고 했다. 나에게 해설 자체가 카오스였다. 온갖 철학 용어가 동원된 문장을 이해하기는커녕 골머리를 흔드는 나에게 ‘부끄러움’과 ‘슬픔’(?)이 덮쳐왔다.
『2170년 12월 23일』은 제11회 김만중문학상 수상작이었다. 150년 후의 성탄절 이틀 전 날짜를 표제로 삼은 것에 대해 시인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껏 공간에서 풍겨나는 것들을 써 왔죠. 지역의 특정 장소에 대한 수준 높은 묘사 작업이 필요하다 싶어 이어온 시작詩作 이었습니다. 하지만 『밤의 화학식』이후 이제는 공간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시집부터는 공간에서 시간으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마지막은 시집을 닫는 「산책자」(133쪽)의 전문이다.
바다를 만나면 바다를 팔짱 끼고 돌아 나가고 돌담을 만나면 돌담을 밀며 걸어 나간다 마치 이것밖엔 모른다는 듯이, 바람이 오면 바람을 닮은 채로 나도 불어가고 강을 만나면 윤슬이 반짝이며 가는 곳을 세어본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은,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일이 이 거리를 흘러다니며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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