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대빈창 2022. 12. 28. 07:30

 

책이름 : 상처받지 않을 권리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프로네시스

 

내가 가장 먼저 잡은 대중철학자 강신주((姜信珠,  1967- )의 책은 『철학 VS 철학』이었다. 이후 나는 작가의 글에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의 감정수업』, 『구경꾼 VS 주체』, 『철학 VS 실천』,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의 시대』, 『관중과 공자』까지.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열한 번 째 책이었다. ‘실천적 삶의 지혜’라는 뜻의 출판사 《프로네시스》가 낯설었다. (주)웅진씽크빅의 단행본개발본부의 임프린트였다.

머리말 「자본주의적 삶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정신분석학자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프롤로그」는 화폐와 상품의 가치를 보여주는 명품 백화점에 들어선 회사원 아가씨의 심리를 묘사했다. 예상보다 많은 보너스로 행복한 그녀는 백화점에서 명품 핸드백과 구두를 쇼핑했다. 백화점 문을 열고 나오면서 경쾌했던 그녀의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기묘한 결여감이 생겨났다.

부제가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였다. 저자는 자본주의적 삶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것을 노래한 시인・소설가 네 명과 자본주의적 삶의 내적 논리를 이론적으로 포착하려 했던 철학자 네 명을 호출했다. 1부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서’는 우리 삶이 자본주의와 도시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많이 받는지를 나타냈다. 이상(李箱, 1910-1937)은 소설 「날개」에서 이 땅에 도래한 자본주의의 핵심을 ‘돈’의 논리에서 찾은 최초로 성공한 작가였다. 독일 지성계의 아웃사이더로 마르크스 이후 가장 철저하게 돈의 논리를 성찰했던 철학자・사회학자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논문 「대도시와 정신적 삶」에서 대도시라는 삶의 조건과 그곳에서 전개되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해 성찰했다.

2부 ‘화려한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는 유행, 매춘, 도박 등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다양한 편린을 담았다. 19세기 파리를 대표하는 시인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는 『악의 꽃』(1857)과 『파리의 우울』(1869)을 통해 산업자본이 펼쳐놓은 대도시 파리의 세계를 노래했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 오히려 탐욕스럽고 잔인할 뿐만 아니라 질투심으로 가득 찬 허영의 존재에 가까웠다. 문학평론가・철학자 벤야민(Water Benjamin, 1892-1940)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19세기 세계 자본주의 수도 파리를 연구함으로써 진정한 자본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복권하려 시도했다.

3부 ‘매트릭스는 우리 내면에 있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처입고 분열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그려냈다. 프랑스의 소설가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 - )는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슨 크로스』를 패러디한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1967년에 발표했다. 주체에게는 행위와 사유를 규정하는 내적인 무의식의 구조가 존재했다. 철학자・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는 『60년대의 알제리: 경제적 구조와 시간적 구조』에서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철저하게 적응되어 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대담한 이론으로 정리했다.

4부 ‘건강한 노동을 선물하기’는 소비사회의 유혹적 논리와 탈출 가능성을 숙고했다. 시인 유하(1963 - )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1980년대를 관통했던 소비사회의 유혹과 인간의 욕망을 성찰했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1970년에 발표한 『소비의 사회』에서 산업자본주의 발달의 핵심은 기술 개발에 따른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에 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허영과 욕망을 부추기는 유혹적인 소비사회의 논리에 있다고 선언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선녀와 나무꾼〉을 누구에게도 양도하거나 빼앗길 수 없는 자유를 노래한 이야기로 읽었다. 철학자에게 선녀의 날개옷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자유였다. 대중철학자는 말했다. “자본주의 하에서 자유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노동을 팔 수 있는 자유와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소비할 수 있는 자유, 소비로 탕진해 다시 노동을 팔아야 하는 자유로, 돈에 예속되고 복종하는 자유”일 뿐이다. 마지막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로 ‘행위자의 내면에 만들어진 습관적 구조’라는 개념이다.

노인네들은 손에서 일거리를 내려놓지 않는다. 그들은 과거의 농촌 출신으로서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 즉 성스러운 노동 행위를 자신들 삶의 의무로 간주했다.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는 자신들이 전자본주의적 아비투스를 가진 반면, 현재 변화된 자본주의적 아비투스를 가진 젊은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눈을 뜨시고, 잠들기까지 항상 손에 무엇인가 들고 계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멀쩡한 두 손 그냥 내버려둬서 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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