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녹두서점의 오월
지은이 : 김상윤・정현애・김상집
펴낸곳 : 한겨레출판
광주의 5・18 사적지는 약 30여 곳이다. 5. 18.부터 5. 27.까지 10일 동안 이어진 항쟁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였다. 항쟁 최후거점이었던 전남도청과 녹두서점은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1977년 헌책방으로 시작해 1981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시아버님은 계엄사가 서점 이름을 바꾸라고 강요하여 녹두서점을 한얼서적으로 바꾸었다)되기까지 4년 남짓 운영되었다. 서점 이름은 문병란 시인이 전봉준의 별명 녹두장군에서 가져왔다.
15평의 작은 책방은 5・18 항쟁에서 수많은 대자보와 전단지를 만든 인쇄소였고, 시민군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간이식당이었으며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1980)을 비롯한 항쟁 지도부의 회의실이었다. 항쟁 후에는 구속자 석방운동의 중심지였다. 『녹두서점의 오월』은 5・18을 정면돌파했던 한 가족 세 사람의 이야기였다.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 김상윤은 유신정권의 ‘4・3 긴급조치 4호’로 징역 중 1975. 2. 16.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그가 연 광주 유일의 인문사회과학서점 녹두서점은 당시 젊은이들의 비판 의식을 키워주는 수원지였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금서들을 비밀리에 운송하여 운동권 후배들에게 공급했다.
오월 어머니집 이사장 정현애는 중학교사로 남편이 5・17. 자정에 내란주동자 예비검속으로 상무대 영창에 끌려간 후 녹두서점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녹두서점에서 리영희의 금서 『8억인과의 대화』를 사간 일이 인연이 되어 김상윤과 1978. 11. 결혼했다. 남편이 지프차에 실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공포가 밀려왔다. 그녀는 구속자 가족들과 상황을 공유하며 항쟁 투쟁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녹두서점은 항쟁소식을 전국으로 알리는 상황실로 변했다. 그녀는 상무대에서 지독한 고문에 시달렸고 광산경찰서 유치장에 구속되었다. 석방된 후 남편을 비롯한 구속자와 사형 집행을 막기 위해 미대사관 항의 방문과 명동성당 단식투쟁, 대법원 재판 투쟁을 이끌었다. 광주에 나타난 전두환의 차 밑으로 몸을 굴렸다.
5・18구속부상자회 광주지부장 김상집은 80. 5. 33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광주에 돌아왔다. 그는 제대 한 달 만에 항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갔다. 시민군을 조직하고 무기를 지급하고 총기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연행된 수천 명이 그를 감싸주었다. 합동수사단은 505보안대 지하실, 헌병대, 상무대 영창으로 끌고 다니며 극렬분자에게 지독한 고문을 자행했다. 운 좋게 1981. 4. 3. 대법원 판결로 형이 확정되자마자 형 집행 정지로 출소했다. 그는 열흘간의 투쟁 상황을 일지형식으로 기록했다. 내가 가장 먼저 활자로 접했던(1985년) 오월 광주의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주요한 기본 자료였다.
1979. 10. 26.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으면서 이 땅에 ‘민주화의 봄’이 찾아오는 듯 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염원을 짓밟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5월 항쟁은 군부독재의 잔인한 학살에 맞선 광주 시민의 저항이었다. 항쟁의 주역들은 들불야학, 극단 광대, 신협, 양서조합 등 운동권 이선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수백 명이 공수부대의 잔인한 학살에 죽었지만 학생지도부와 운동권 일선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항쟁이 끝나고 3,000명이 조사를 받았는데 그들은 채 100명도 되지 않았다. 피바다의 항쟁 한가운데 목숨걸고 싸운 사람들은 기층민중이었다.
작가 황석영은 추천사 「오래오래 기억하라」에서 “녹두서점의 가족들이 피와 눈물로 얼룩진 ‘광주 5월’의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고 말했다. 매년 5월이 돌아오면 광주시민들은 지독한 열병에 시달렸다. 42년 전 분노・고립・낙인・폭력은 여전히 살아남은 자들을 괴롭혔다. 고문후유증으로 온 몸에 발진이 돋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5・18기념식에 한 번도 발걸음을 하지 못했다. 김상윤은 말했다. “우리 가족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2012년부터 마음에 담아 둔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5・18항쟁에 대한 폄훼가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1980년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들의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의 편에 섰던 자들이 오늘도 권력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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