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 여름의 끝
지은이 : 이성복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정현우의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를 잡으며, 해설・발문을 먼저 읽기로 했다. 詩적 이해도가 형편없는 者의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본문의 시들을 읽었고, 문학평론가 박철화의 「‘길’위에서의 사랑 노래 - ‘나의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와 마주쳤다. 나는 어쩔 수없이 신경숙 표절사건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문학평론가는 말했다. “신경숙 자신의 오만한 처신이 사태를 키운 셈이지만, 메이저 출판사들이 스타제조 시스템을 반성하고 바꾸려는 노력없이 한국문학은 정상화되기 어렵다.”
시집 :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아, 입이 없는 것들』
산문집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시론 : 『극지의 시』, 『불화하는 말들』, 『무한화서』
지금까지 내가 잡은 시인의 책들이다. 시집으로 다섯 권 째였는데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었다. 부 구분 없이 106편의 詩를 담았다. 사랑시 어법으로 노래한 시편들이었다. 역설적 시상전개에서 나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떠올렸다. 백일홍에 빗대어 사랑과 절망을 노래한 표제시・끝시 「그 여름의 끝」(117쪽)의 전문이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80년대 우리 시단의 가장 탁월한 성취로 ‘시인 중의 시인’이라 불리는 이성복(李晟馥, 1952 - )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구 계명대에서 30년간 문예창작・불문학을 가르쳤고 정년퇴임했다. 시인은 말했다. “많은 시인이 비장하게 죽었다. 기형도・김소월・이상・백석······. 그렇게 살아서 죽은 게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된 거다. 시인이 교수로 살았으면 온실에서 산 거지. 복이다 싶으면서도, 어떨 땐 내가 오리 비슷하다 싶다. 날지도 못하고 헤엄도 시원하게 못 친 것 같은 기분.”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0) | 2023.01.20 |
---|---|
녹두서점의 오월 (0) | 2023.01.19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2 (2) | 2023.01.17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0) | 2023.01.16 |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 (0) | 2023.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