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지은이 : 에릭 홉스봄
옮긴이 : 황덕호
펴낸곳 : 포노
벌써 10여년 저쪽의 세월이 흘렀다. 컴맹으로 Daum 블로그를 개설하고 버벅거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준 〈댄서〉라는 닉네임의 블로거가 있었다. 그의 주요 테마는 정치시사로 보기 드문 깊이의 소유자였다. 짧지 않은 댓글에서 그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을 얘기했다. 그때 책을 잡았어야 했다. 에릭 홉스봄(Eric John Hobsbawn, 1917-2012)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역사 4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가 대표작이었다. 아둔한 나는 이제 군립도서관 대여도서로 20세기 거인의 책들을 메모했다.
책의 카피는 ‘역사학자 홉스봄이 바라 본 재즈의 삶과 죽음’으로 30-40년 전 미국, 영국의 서평 기고지에 그가 쓴 재즈 관련 글을 모았다. 홉스봄은 1950년대 중반부터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재즈 비평가로 활동했다. 옮긴이는 KBS 클래식 FM 〔재즈수첩〕의 진행자 황덕호였다. 1부 ‘평범한 사람들’의 4개 챕터는 재즈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비범한 거장들에 대한 글을 담았다.
시드니 베세(Sindney Bechet, 1897-1959)는 루이 암스트롱과 쌍벽을 이루었던 유일한 즉흥연주자로 재즈 역사상 클라리넷을 대신해 색스폰을 본격적으로 연주한 최초의 뮤지션이었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1899-1974)은 20세기 재즈를 대표하는 작곡가, 밴드 리더로 피아니스트였다. 엘링턴 밴드의 개성 강한 연주는 단원들의 즉흥성을 살린 공동창작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카운트 베시(Count Basie, 1904-1984)는 탁월한 스윙 스타일의 밴드 리더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흑인 연주자들이 느끼는 재즈의 정수를 뽑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베이시 스타일의 사운드는 재즈의 진화를 이끌었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1915-1959)는 독보적인 음성과 즉흥 창법의 여성 재즈 보컬이었다. 그녀의 앨범 〈이상한 과일 Stranger Fruit〉은 미국의 인종차별과 폭력을 고발한 노래로 역사에 남았다.
2부 ‘비범한 음악’의 3개 챕터, 「재즈, 유럽에 가다」는 재즈가 유럽에 전파된 사회적 조건을 분석했다. 대서양 시장이 형성되었고, 미국에서 건너 온 ‘현대성’과 더불어 영국 노동계급을 위한 변화된 사교춤으로 성공의 길을 달렸다. 「민중의 음악 스윙」은 1930-40년대 스윙음악 지지계층의 정치적 태도와 그를 통한 사회적 성격을 살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시대(1933-1945년)의 ‘뉴딜 진보주의’라고 불렸던 다양한 좌파 연합세력이 미국 전역에 스윙을 보급했다. 「1960년 이후의 재즈」는 90년대 초반까지 재즈를 둘러싼 미국 대중음악의 환경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얘기했다. 1960년 이후 3년 동안 재즈의 황금시대가 절정을 이뤘던 시기에 비틀즈Beatles가 주도한 1963년 영국발發 침공British Invasion으로 재즈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재즈와 록큰롤은 블루스에 같은 뿌리를 두었지만 재즈는 소수자의 음악으로, 록큰롤은 다수의 대중음악으로 발전했다. 재즈는 모던 재즈이후 연주자 중심의 음악으로 나아가 전위주의의 길을 걸었다.
홉스봄은 1933년 열여섯・일곱의 나이에 처음 재즈를 만났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전적으로 뿌리를 두고서 주류 예술로 성장한 극소수의 사례”(186-187쪽)로 재즈를 읽었다. 재즈는 민중들에 의해 탄생되었고 그들의 정서를 담은 음악이었다.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독자적인 예술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재즈의 가치를 인지하고 진지하게 대했던 소수 재즈팬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가 컸다. 옮긴이는 발문 「에릭 홉스봄과 재즈」에서 에릭 홉스봄이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친 글을 빌려와 마무리로 삼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을 것이기에 작은 소회를 담은 이 글이 조금 늦어진 것은 그와 혹은 우리에게 그리 누가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