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악질가
지은이 : 하종오
펴낸곳 : 도서출판 b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다작을 꼽으라면 하종오 시인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악질가』는 서른아홉 번째 시집이다. 1975년 『현대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창비)를 상재한 이래 꾸준히 시집과 동화를 펴냈다. 나에게 시인의 시집은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님 시집』, 『신강화학파』, 『죽은 시인의 사회』에 이어 다섯 번째 시집이었다.
재작년 12월 《강화뉴스》 편집실에서 시인과 상면했다. 그때 시인의 새 시집이 신년에 출간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판소리체시집이라고 했다. 김지하 시인 ‘담시’와의 변별성을 시인은 얘기했다. 나는 새 시집을 꼭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날 알아두었던 시인의 연락처를 잊어버렸다. 시집 앞날개의 이메일 주소를 떠올렸으나 나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0월이 되어 오랜만에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시인의 이름을 입력했다. 내가 한 눈을 팔던 한여름 팔월에 시집이 나왔다. 상반기동안 눈을 크게 떴을 때 보이지 않던 시집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출간되었다. 부리나케 손에 넣었으나 이제 손에 펼쳤다. 시인과 만난 이후 정확히 일년 만에 시집을 펼쳤고, 리뷰를 긁적였다. 판소리체시 여섯 마당은 한국의 군郡 지방구성체의 주체 군수, 군의회의원, 공무원, 토호, 주민의 다섯 계층 또는 계급으로 구성되었다. 시집의 차례는 창작 순서대로 수록되었고, 마지막은 원자력(핵) 발전소를 배경으로 한 한 편을 추가했다.
악질가 / 토호가 / 대지가 혹은 대필가 / 염치가 / 말단가 / 참새가 혹은 생쥐가
「악질가惡質歌」의 배경은 강도군强盜郡이었고, 전악질 군수가 주인공이었다. 시인의 현 거주지 강화江華의 옛 지명은 강도江都였다. 고려말 몽고군의 침략으로 고려개성의 수도가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39년간 고려의 수도였다. 그 터가 강화읍 관청리 고려궁지였고, 고려왕릉 4기가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토호가土豪歌」의 배경은 산수군山水郡으로 군수와 토호 토건업자들의 휴양림 조성, 펜션 건축, 관광객 유치를 명분으로 개발이익에 따른 개싸움을 이야기했다. 「대지가大地歌 혹은 대필가代筆歌」는 연명군延命郡이 배경으로 친일분자, 독재 부역을 한 할아비, 아비를 둔 공무원 출신 군의회의장의 대필자서전의 곡필 사건을 다루었다.
「염치가廉恥歌」의 배경은 체면군體面郡으로 촌구석까지 밀려 내려온 공장 신축으로 땅부자 염치씨는 거금의 보상금을 노리고, 체면군민들은 앞들에 화력발전소, 뒷산에 시멘트 공장, 마을옆 반도체공장에 자식의 취업을 바라면서 모두 체면을 내던지고 공장 건설 환영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에 나선 장면을 노래했다.
「말단가末端歌」의 배경은 잡초군雜草郡 잡화면雜花面에서 김씨 성의 두 부부 사이에서 출생한 쌍둥이 장남 김공무金公務와 차남 김무원金務員이 자식만이라도 펜대를 굴리며 사는 부모의 소원을 이루어 일취월장, 승승장구, 급속승진하다 부정비리로 패가망신하는 수난사를 다루었고, 「참새가歌 혹은 생쥐가歌」의 배경은 풍어군 수평면 명사십리로 낡은 너와집에 혼자 사는 선천성 귀머거리 금희 여인이 주인공이다. 한적한 어촌에 건설된 핵발전소가 쓰나미로 붕괴되는 장면은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과 거대한 쓰나미로 붕괴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 떠올랐다.
마지막은 《도서출판 b》의 펴낸이・시인 조기조의 추천평이다. “수록된 판소리체시 6편은 과장, 축소, 점층, 비약, 생략, 반복, 왜곡, 반어, 역설, 대구對句 등의 표현법과 일상어, 유행어, 비속어, 은어를 대담하게 구사하면서 문장에서 주체와 객체를 자유자재로 바꾸어 풀뿌리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는 지방자치제의 현장과 이면을 적나라하게 희화화하고 풍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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