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동백꽃 지다

대빈창 2023. 2. 15. 07:30

 

책이름 : 동백꽃 지다

그린이 : 강요배

말한이 : 증언 34명(정리 김종민)

펴낸곳 : 보리

 

나는 80년대 민중미술을 통해 제주출신 화가 강요배의 그림을 접했다. 그리고 오래전 화가의 이름에 얽힌 아픈 사연을 어느 글에서 읽었다. 화가의 아버지는 제주 4・3 소용돌이에서 이름 때문에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는 현장에 있었다. 토벌군이 김철수!라는 이름을 호명하자 두 명이 일어섰고, 그들은 다짜고짜 그 자리에서 두 명을 총살했다. 화가의 부친은 아들 형제에게 강거배, 강요배라고 지었다. 불문학자였던 화가의 형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제주 4・3 작가 현기영의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에서 읽었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판형의 22.5x26.5㎝의 양장본을 열었다. 화가는 서문 「시간 속에서」에서 말했다. ‘혹 , 내 생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 그때에 이르러서야 나는 ‘4・3’을 생각했다.(4쪽) 화가는 3년간 한 농가에 틀어박혀 그림을 하나씩 완성해 나갔다. 〈제주 민중항쟁사〉 연작 그림이었다. 부제가 ‘강요배가 그린 제주4・3’으로, 6부에 나누어 그림 59점이 실렸다. 1부 - 5부까지의 51점은 4・3 항쟁의 전 과정을 시간순으로 표현했다. 6부에 실린 8점은 1992년 이후 4・3에 대한 화가의 느낌을 표현한 반추상화半抽象畵였다.

그림마다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의 김종민 선생이 가려 뽑은 증언이 실렸다. 선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제주에서 20년을 한결같이 강제로 입이 막힌  ‘제주 4・3’을 밝혀냈다. 언론민주화 운동으로 해직되자 〈제민일보〉 창간의 일원으로 〈4・3 특별 취재반〉으로 활동했다. 1990-1999년까지 기획특집 ‘4・3은 말한다’를 456회 연재했다.

국가권력이 자행한 끔찍한 민간인 학살. 1948년 11월부터 1949년 3월까지 벌어진 초토화 작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무차별 학살극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는 그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바다로 도망치는 제주민중을 감시하는 미군함정이 제주도를 에워쌌다. 피의 참극으로 희생된 3만 명은, 당시 제주도 도민은 약 27만 명으로 1/9이었다. 오랜 세월 제주 4・3은 금기禁忌였다. 제주4・3 항쟁의 전 과정을 흑백 그림의 절제와 채색 대형화의 격정으로 되살린 화가의 그림과 처절한 항쟁의 아픈 기억을 되살린 제주사람들의 증언으로 책장을 넘기는 나의 손가락은 멈칫거렸고, 가슴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 울컥 치미면서 코끝이 매캐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나의 뇌리에 그림 3점이 오래 잔영으로 남았다. 표제화 〈동백꽃 지다〉는 130.6x162.1㎝의 캔버스 아크릴릭으로 1991년작이다. 화면 중앙에 동백숲의 시뻘건 동백꽃이 낙화화고, 멀리 눈싸인 계곡의 학살 현장의 선혈이 낭자했다. 〈젖먹이〉는 160.0x130.0㎝의 캔버스 아크릴릭으로 2007년작이다. 북촌리 대학살 현장에 아기를 업은 부인이 있었다. 아기는 어머니가 총에 맞아 죽은 줄도 모르고 젖을 빨았다. 〈빌레못굴의 유골〉은 116.7x80.3㎝의 캔버스 유채로 1992년작이다. 빌레못에 숨어있던 마을주민 40여명이 토벌군에 발각되었다. 군경의 살려주겠다는 말에 굴밖으로 나섰던 사람들은 바로 학살당했다. 두 살난 딸을 엎은 부인은 깊은 굴 속으로 피신했다가 길을 잃고 굶어 죽었다. 모녀의 유골은 세월이 흘러 굴 탐사팀에 의해 발견되었다.

‘태평양으로 떨어지는 서귀포 정방폭포에서 얼마나 많은 지역 주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되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다.’(149쪽) 나는 1988년 5명의 여행팀 일원으로 보름간 전국을 일주하며 제주도에 4일을 머물렀다. 부끄럽게도 그 시절, 나의 의식에 제주4・3은 없었다. 작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시인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노찾사의 〈잠들지 않는 남도〉, 그리고 화가 강요배의 〈제주 민중항쟁사〉를 통해 차츰 눈을 떠갔다.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 선생은 1976년부터 20년간 12권 분량의 대하소설 『화산도』를 연재하며 국제사회에 제주4・3의 참상을 알렸다. 여든이 넘은 그는 제주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초대받아 단상에 섰다. “일본에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왔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을 때 , 이 활주로 밑에 얼마나 많은 시신이 묻혀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하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대로 단상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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