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묵자가 필요한 시간

대빈창 2023. 2. 16. 07:30

 

책이름 : 묵자가 필요한 시간

지은이 : 천웨이런

옮긴이 : 윤무학

펴낸곳 : 흐름출판

 

故 신영복 선생은 말했다. “묵가는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걸어 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보여 준 역설적인 선구자였다.” 그동안 나는 〈묵자墨子〉에 대해 이곳저곳 흩어진 단편을 대했을 뿐이다. 재야한학자 기세춘 선생의 국내 최초 완역본 『묵자』에 대한 나의 눈길은 차츰 시들해졌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군립도서관에서 우연히 『묵자가 필요한 시간』를 만났다.

천웨이런(陳爲人, 1951 - )은 중국의 유명한 전기 작가로 80여권이 넘는 중국 고전과 명언, 신화와 전설, 속담, 소설, 산문, 연극, 대중가요를 총 망라해 2,500년 전 묵자를 살려냈다. 중국의 사상가 손이양, 후스, 량치차오, 궈모루, 왕중 등의 묵자에 대한 평가를 비교 분석했다. 량치차오는 말했다. “묵자는 큰 마르크스이자, 작은 예수다.” 책의 구성은 묵자의 생애와 사상적 특성을 3부 29개 주제로 나누어 소개했다.

1부 「묵자에 관한 여러 논쟁과 공격」은 묵자가 역사의 그늘아래 묻혔던 이유를 분석했다. 묵자는 성씨, 출생년도, 출생지, 결혼과 자녀 유무조차도 알려진 바가 없다. 『사기史記』는 선진시대이래 제가백가 사상을 음양가, 유가, 묵가, 명가, 법가, 도덕가로 정리했다. 한비자는 말했다. “세상의 가장 유명한 학문은 유가와 묵가이다.” 그러나 한대 이후 묵가는 학파의 명칭만 유래할 뿐 그들의 사상과 묵자의 행적은 2000여 년동안 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대적 블랙리스트 묵자는 중국 봉건전제 시기 2000년 동안 암흑 속에 구금되었다. 묵자는 전쟁으로 들끓는 시국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민중의 편에 서서 지배문화와 착취제도를 개혁하고자 권력에 정면으로 맞섰다.

2부 「‘인간다움’을 지키고자 노력한 묵자의 발자취」는 반전과 평등, 사랑에 대한 묵자의 사상을 다루었다. 묵자의 핵심 사상은 겸애兼愛-평등한 사상이었다. 이외 10대 편명으로 비공非攻 - 침략전쟁 비판, 상현尙賢 - 현명한 자를 높임, 상동尙同 - 위로의 통일, 절용節用 - 쓰임의 절약, 절장節葬 - 장례의 절약, 비악非樂 - 음악 비판, 천지天志 - 하느님의 뜻, 명귀明鬼 - 귀신의 증명, 비명非命 - 운명론 비판이다. 묵가 사상의 근본 겸애兼愛는 모든 사람이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귀천을 나누지 않으며, 빈부・신분・혈연・지역에 상관없이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다.

3부 「묵자가 이룬 성취와 과업의 의미」는 2000년 전의 천재 사상가 묵가를 복원시켰다. 중국과학사의 권위자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은 “묵가가 고대 과학기술사에서 이룩한 위대한 업적에 경탄하면서도 여러 세기를 앞선 묵가의 과학기술 사상이 왜 서양처럼 혁명적으로 발전을 이루지 못했는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묵자는 논리학, 수학, 역학, 광학, 음양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적 성취를 이룩했다. 량치차오는 묵가의 명학 明學을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을 핵심으로 하는 논리학, 인도의 인명학因明學과 함께 3대 논리학으로 꼽았다.

춘추전국시대 공맹유학, 노장 철학, 법가 학설의 백가쟁명에서 묵가 학설은 민중의 입장을 대변하여 기득권을 제외한 모든 하층 계급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층계급 출신 묵가가 이끌었던 묵자는 학술 유파일 뿐 아니라 준군사조직・준정치조직으로 민중의 강대한 정치역량을 과시했다. 이에 위정자들은 묵자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고, 문인사대부들은 애써 감추기에 바빴다. ‘묵가 사상은 어쩌면 사람들 가슴속에 최초로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남는 데를 덜어서 부족한 데를 보충하는 혁명의 불씨를 뿌렸는지도 모른다. 묵자의 겸애와 애동 사상은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이후 여러 차례 농민 기의와 농민전쟁의 사상적 무기가 되었다.’(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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