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검은 시의 목록
엮은이 : 안도현
펴낸곳 : 걷는사람
2016-2017년 겨울,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 한편에 문인들의 임시공공극장 블랙텐트가 설치되었다. 어느 날 오후, 시선집 『검은 시의 목록』 출간기념으로 시인들의 시낭송회가 있었다. 시선집은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 99명의 시를 모아 펴냈다. 문화에 대한 인식이 닭대가리 수준에 불과했던 정권은 시국선언으로 밉게 보인, 다른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밴댕이 소갈딱지 심보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는 이유로 명단을 작성했다. 그들의 눈에 민중은 개・돼지로 보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문예기금 지원 대상자 선정에서 제외시켰다. 이 땅의 문화진흥책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환경에 문인들을 방치하는 것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돈을 통해 궁핍한 시인들을 더욱 옥죄겠다는 발상이었다. 민간 독재정권은 하는 짓도 이렇게 치졸했다. 그렇다고 자존감이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시인들이 두 손을 받쳐 들고 구걸하기를 바랐단 말인가. 2년 이내에 지면에 발표되지 않은 시들을 모았다.
시선집을 엮는 안도현 시인은 “누군가는 시인들을 검은 색 한 가지로 칠하려 했지만, 시인은 그리고 인간은 한 가지 색으로 결코 칠해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시선집에 담긴 시들은 정치적 색을 띠거나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시들이 아닌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차례는 시인의 이름을 사전식으로 배열했다.
원로시인으로 1956년 『문학예술』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경림의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1968년 『사상계』로 등단한 강은교의 「불빛을 위한 연습 Ⅰ」에서, 신인으로 2014년 『현대시』로 등단한 최세운의 「라라」,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현우의 「회벽」까지. 마지막은 함민복의 「막걸리」(199쪽)의 전문이다.
윗물이 맑은데 // 아랫물이 맑지 않다니 // 이건 아니지 // 이건 절대 아니라고 // 거꾸로 뒤집어 보기도 하며 // 마구 흔들어 마시는 // 서민의 술 //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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