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고전, 발견의 기쁨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태학사
옛 글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쉽게 풀어 전해주는 고전인문학자 정민의 『고전, 발견의 기쁨』의 카피는 ‘우연처럼 다가와 필연처럼 빠져든’이었다. 저자는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 ‘감전된 것처럼 다른 일을 모두 접고 모든 일상이 이들 자료 위에 집중“(5쪽)하였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고 논문 16편을 실었다.
1부 ‘다산의 여운’은 다산과 관련된 자료 5편, 리움미술관 소장 128.0x355.0㎝ 8폭 병풍그림 〈표피장막책가도豹皮帳幕冊架圖〉 한가운데 펼쳐진 그림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의 시 3편을 발견. 『삼사탑명三師塔銘』은 대둔사 승려 연담蓮潭 유일有一(1720-1799), 백련白蓮 도연 禱演(1737-1807), 완호玩虎 윤우倫佑91758-1826) 세 선사의 탑명 또는 관련들을 한데 모아 정리한 서첩・『두륜청사頭輪淸辭』는 다산이 대둔사 승려 호의縞衣 시오始悟(1778-1868)를 위해 짓고 직접 친필로 써 준 호게첩號偈帖. 『치원소고巵園小藁』는 38장1책으로 된 치원巵園 황상(黃裳, 1788-1870)의 친필 문고文藁・『치원진장巵園珍藏』은 28통의 서신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편지첩. 1813년 제주 양제해梁濟海 모변 사건은 중앙 파견 관리의 횡포에 반발한 제주 토호의 제주 자치국가 건설 시도 사건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 최근 일본 교토대 가와이문고河合文庫에 소장된 이강회(李綱會, 1789-?)의 『탐라직방설耽羅職方設』 권2에 수록된 「상찬계시말相贊契始末」에 의하면 상찬계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사건. 다산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의 「부해기浮海記」는 강진에서 흑산도를 돌아오는 50여 일간의 여정을 기록한 기행일기.
2부 ‘자료의 갈피’는 우연한 계기로 접한 자료들의 의미를 추적해 간 글 7편, 『집복헌필첩集福軒筆帖』은 사도세자의 글씨와 권정침(權正忱, 1710-1767)의 편지 두통, 유관현(柳觀鉉, 1692-1764)의 편지 한 통, 이우(李瑀)의 편지 1통, 아들에게 보내는 구곡공龜谷公의 첫 세 줄만 남은 편지를 모은 첩. 불운한 실학자 이덕리(李德履, 1725-1797)의 『상두지桑土志』는 18세기 후반 국방전략과 군사무기 전문서.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35세나던 해에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자필 필사본 『영처집嬰處集』에 써준 친필 서문. 박제가가 서양화법을 적용해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 〈연평초령의모도延平齠齡依母圖〉의 위작僞作 변증.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가 변경 사신 행차에 수행한 제자 정빈경鄭彬卿을 전송하며 써 준 7언 절구 3수. 오우여吳友如의 『점석재화보點石齋畫譜』에서 「이필대설以筆代舌」 그림 한 점에서 시작된 중국 양주를 떠돌던 조선인 서예가 조옥파趙玉坡의 발자취 추적. 18・19세기 한국의 고전소설의 소비는 기존의 소설책을 빌려 그대로 베껴 쓰는 필사본 형태로 긴 소설책을 한 글자 한 글자씩 필사하는데 여러 날 소요.
3부 ‘인문의 무늬’는 현장과 문화상징을 탐색한 글 4편. 충북 단양의 사인암舍人巖은 고려말 우탁(禹倬, 1263-1342)이 사인舍人 벼슬에 있을 때 이 곳에 머물렀다는데서 이름을 얻음・박제가(朴齊家, 1750-1805), 이인상(李麟祥, 1710-1760), 이윤영(李胤永, 1714-1759) 등 사인암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필적이 새겨지게 된 경위와 사인암에 관한 옛 기록 등. 고토 분지로가 1903년 한반도의 지질구조도를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 모양으로 그렸다. 이에 육당 최남선(1890-1957)은 1908년 11월 『소년』지를 창간하며 삽도에 〈한반도 호랑이 지도〉등장. 국학자 위당 정인보(鄭寅普, 1893-1950), 나비학자 석주명(石宙明, 1908-1950), ‘남나비’ 일호 一濠 남계우(南啓宇, 1811-1890)의 나비에 얽힌 이야기. 해를 따라 방향을 바꾼다는 ‘향일규向日葵’의 명칭이 빚어 낸 접시꽃과 해바라기의 개념 혼란.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챕터는 그동안 존재를 몰랐던 다산의 시 3수를 발견하는 고전인문학자의 눈썰미였다. 〈표피장막책가도豹皮帳幕冊架圖〉는 표범무늬 장막을 그린 8폭 병풍 그림인데 제5폭과 6폭은 장막을 살짝 걷고 안쪽의 책가도를 그려 넣었다. 화면 중앙에 돋보기가 얹힌 시첩 한 권이 보이는데 세 수의 시가 적혀있다. 세 번째 시는 전체 5행 중 2행만 보이고 나머지는 뒷면으로 넘어갔다. 세 수의 차운시次韻詩의 원작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 1206-1294)은 고려 때 강진 만덕사 백련사白蓮社의 4대 국사國師다. 시문에 뛰어나 『호산록湖山錄』을 남겼다. 시 끝에 남은 서명이 ‘자하산인紫霞山人’, ‘다창 茶傖’이었다. 저자는 차를 좋아하고, 자하산에 살아 자하산인이란 별호를 썼으며, 진정국사의 시집을 읽었고, 집과 떨어져서 남방에 한동안 머물렀던 사람,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오직 정약용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밝혔다. 시들은 다산의 시집을 비롯한 어떤 필사본에도 전하지 않는 유일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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