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시각이 많이 늦어졌습니다. 어느덧 동짓달 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봉구산 산행길은 건너 뜀없이 다행스럽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침 7시에 기상해서 졸린 눈을 부비며 억지로 아침밥을 우겨넣고, 낡은 등산화을 꿰고 산길로 들어섭니다. 푸른 새벽이 점차 엷어지면서 찬 기운속으로 여명이 밝아 옵니다. 산정에 다다른 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다로 눈길을 돌립니다. 어이없게 서녘 하늘에 황달걸린 해가 누런 쟁반처럼 허공에 걸려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당황했습니다. 낮달이었습니다. 봉구산 자락의 섬마을 느리는 바다를 앞마당으로 터를 잡아 어쩔수없이 북향입니다. 그러니깐 해가 산을 넘어와야 마을의 아침이 밝아 옵니다. 산정에서 바라본 동녘의 아침해는 붉은 기운만 얼비추는데, 서녘의 낮달이 아침해처럼 허공에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 입니다. 낙엽을 떨군 활엽수 숲에 걸린 커다란 낮달을 보면서 저는 '김홍도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를 떠 올렸습니다. '성근 숲에 밝은 달이 떠 오르는 모습'을 포착한 단원의 대표작입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는 내일을 기약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카메라를 챙긴 아침 산행은 2 ~ 3일 뒤에나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겨울 낮달의 이동 속도는 대단히 빨랐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산정에서 이 그림을 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나무 숲이 에워싼 반공에 걸린 낮달이었습니다. 북사면을 스치는 찬 바람 때문인지 겨울 아침의 낮달이 제게는 아주 춥게 느껴졌습니다. 깨끗한 얼음처럼 쩡! 갈라질것처럼 파란 허공에 걸린 낮달이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그것은 가녀린 고라니의 눈빛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맑고 깨끗한 고라니의 눈망울처럼 보였습니다. 커다란 나무에 몸을 가리고 겁먹은 눈망울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고라니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지난 여름 뭍에서 예닐곱명의 '유해조수수렵단'이 건너왔습니다. 허락을 받고 고라니를 잡는 사냥꾼들 이었습니다. 며칠간 산속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마을 방송에서는 입산을 금지했습니다. 피치못할 일로 산에 들때는 빨간색 옷을 착용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고라니 씨를 말렸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번졌습니다. 정말! 가을이 다 지나도록 아침 산행시 고라니를 볼 수 없었습니다. 고작 30분의 짧은 산행이지만 평소에는 인기척을 느낀 고라니가 황급히 줄행랑을 놓는 뒷모습을 대여섯마리 볼 수 있었습니다. 아! 녀석들이 몰살당한 것은 아닐까. 다행히 찬바람이 불면서 하나둘 녀석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겁에 질렸으면 그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까요. 작은섬 주문도 농부들의 밭농사는 한마디로 고라니와의 전쟁입니다. 간척으로 일군 논이 바다를 막은 제방 안쪽의 평지에 자리잡은 반면, 밭은 급경사인 산자락에 매달려 있습니다. 묘를 이식한 고구마나, 콩, 감자 등이 여린 새순을 틔우면 당연히 고라니는 달겨 들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폐그물로 밭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둘렀습니다. 하지만 허술한 곳을 고라니는 잘도 찾아냅니다. 열에 받친 농부는 몽둥이를 휘두르고, 놀란 고라니는 겅중겅중 잘도 도망 다닙니다. 정부의 권장 사업은 자부담이 워낙 커 설치하는 농가가 없습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사업인 것 입니다. 산 전체를 울타리치는 공장형 방목단지에나 어울리는 탁상공론의 사업 형태입니다. 대중매체에서는 OECD 국가답게 생태와 환경을 잘도 조잘대고 있습니다. 저의 짧은 식견은 이렇습니다. 현실성없는 보조사업으로 농부들을 우롱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고라니가 피해를 입힌 작물에 대한 보상을 정부에서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라니도 살고, 농부도 살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고라니와 농부가 애처로운 낮달을 슬픈 얼굴로 같이 처다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감상적인가요. 하지만 고라니의 서식지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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