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세암
지은이 : 정채봉
펴낸곳 : 창비
아동문학가 정채봉(鄭埰琫, 1946-2001)은 이른 나이 55세에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가 넘었다. 아둔한 나는 이제야 그의 유일한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와 1986년 《창비》에서 초판이 나온 동화집 『오세암』을 잡았다. 군립도서관 어린이문고에서 대여한 책은 2014년 6월 개정3판이었다. 머리말 「부끄러움 속에서」, 4부에 나누어 22편의 동화가 실렸고, 삽화는 이현미의 그림이었다.
제1부 7편의 글들은 수많은 것들 가운데 맑은 것만 가려서 보아 가슴이 하얗게 부풀은 흰구름이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강나루 아이들」은 과수원집 손자와 강나루뱃사공 손녀의 강나루 병원놀이 소꿉장난. 「꽃그늘 환한 물」은 골 깊은 산속 암자 눈과 키가 큰 스님은 눈이 많이 오자 굶주리는 산짐승들을 위해 저장한 무를 뒤란에 흩뿌려놓았다. 「풀꽃 꽃다발」은 산밑 고아원 아이들이 자신들을 아껴주던 보모 결혼식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야생꽃다발 선물.
「하늘 나라 우체부」는 일을 마치고 강가 금모래를 아이들 놀이터에 쏟아 붓는 우체부가 밤실 마을 새로 생긴 놀이터의 아빠 잃은 국민학교 입학생 이미경의 편지에 하늘나라 아빠 답장을 써서 보내는. 「위문 온 매미」는 여자아이의 위문편지를 받은 김일병은 만든 잠자리채로 잡은 매미 서른 마리를, 외출을 받아 서울 국민학교 주변 나무에 풀어주었다. 「신호등 속의 제비집」은 시내 네거리 중앙 신호등에 지은 제비집을 보호해주는 마음 따뜻한 시민들. 「저 들 밖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역 광장의 구걸하는 장님부부를 도와주는 유명한 음악가 부부교수.
제2부 8편의 글들은, 「문」은 심심했던 유치원생 리태와 장독대 눈사람의 마음을 열고 살라는 통화. 「쌀 한 톨」은 만희가 남긴 밥그릇의 밥알과 김치쪽의 울음에 농부의 정성을 떠올리며 용서를 비는. 「성모님의 유치원」은 유치원생 은아가 꽃밭 돌담너머의 병든 꽃나무에 물을 주고, 꽃밭 친구들에게 소개. 「거울 나라」는 숨박꼭질하다 맑은 마음 세상 거울 나라에 간 원이는 풀꽃처럼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한다는 마음을. 「천사의 눈」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7살 이미리는 소아과 어린 환자를 달래주고, 조각가 아저씨가 만든 죄인상에 자신의 눈과 입을 떼어주는 꿈을 꾸는 천사.
「바다 종소리」는 물새들이 쉬어가는 작은 바위섬 뎅바위 근처 바닷 속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황룡사 대종을 몽골군이 약탈하다 대왕암 부근 바다에 빠트렸다는 대종천 설화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방아」는 별명이 백결선생으로 헤어진 옷을 수없이 기워 입은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거문고 소리를 돈에 팔지 않았다. 섣달세밑 집집마다 떡방아 찌는 소리가 요란한데 우리집만 조용했다. 그때 아버지 방에서 거문고 소리가 흘러나오고 하늘에서 하얀 떡가루가 퍼부었다. 「모래성」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위 성모병원에 입원한 영민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왔다. 같은 병실에 있던 동갑나기 은하가 중환자실로 옮겼다. 자신이 밤새 수술을 받는 동안 은하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면서 병이 덧나.
제3부 6편의 글들은, 「은하수의 노래」는 결핵 앓는 오빠가 만든 인형은 여동생이 오빠 약값을 벌기 위해 전봇대 아래서 한나절을 기다린 끝에 주인을 만났다. 인형의 주인 로사는 피아노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났고, 많은 세월이 흘러 인형을 샀던 아빠도 죽고,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다. 먼 훗날 고국에 돌아와 로사는 인형을 피아노 위에 앉혀놓고 연주회를 열었다. 「돌아오는 길」은 문둥병 환자의 목을 축이라는 천사의 명을 어겨 하늘나라에서 내쫒긴 생수가 고달픈 여정 끝에 ‘성 나자로 마을’에 닿는. 「왕릉과 풀씨」는 겨울바람에 왕릉에 곧두박질 친 풀씨 하나가 왕릉의 위엄을 말하는 개미의 영혼을 깨우치는. 「진주」는 조개마을에 사는 단 한집 백합이 태풍에 밀려온 진주조개한테 영원의 깨달음을 얻고, 아기전복한테 달겨드는 불가사리와 맞서다 얻은 상처가 진주가 되기를. 「행복한 눈물」은 아프리카에서 잡혀와 동물원에 갇힌 앵무새가 초심을 잃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굶더라도 진실되고 떳떳한 삶을 소중하게 지켜나가는. 「별이 된 가시나무」는 나무들 사이에서 눈총만 받아 비탈진 언덕에 뿌리를 내린 가시나무는 하느님의 말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마침내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늘때 가시나무는 면류관이 되었다.
제4부 표제작이며 아동문학가의 대표작 「오세암」을 펼치면서 설악산 오세암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를 떠올렸다. 어린 작가가 할머니 손을 잡고 찾은 순천 선암사에서 들은 옛 설화가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스님은 포구에서 남매거지를 처음 만났고, 설악으로 향하는 길가의 짚가리 속에서 묵으려는 남매를 다시 만났다. 추운 날씨가 염려되어 스님은 남매를 절로 데려갔다. 남동생 길손이의 장난이 심해 젊은 스님들의 눈총을 받자 스님은 마등령 중턱 관음암으로 공부하러 길손이를 데리고 떠났다. 장님소녀 감이는 큰절에서 제 앞가림을 해나갔다. 길손이는 암자의 구석진 곳을 뒤지다 문둥병에 걸린 스님이 묵다가 죽은 골방을 발견했다. 길손은 골방의 관음보살 그림을 엄마로 여기고 매일 그 방에서 놀았다. 저잣거리에 내려 온 스님은 폭설로 길이 끊겨 암자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먹을 것 없이, 홀로 남겨진 길손이에게 스님은 한 달 스무날이 지나서야 감이와 함께 어렵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때 저멀리 관음암에서 목탁 소리와 염불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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