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랑캐의 역사
지은이 : 김기협
펴낸곳 : 돌베개
출판칼럼리스트 故 최성일(1967-2011)의 책을 잡다가 역사학자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에 대한 서평을 접했다. 그동안 나의 책읽기는 왼쪽으로 경도된 것이 사실이었다. 합리적 보수주의자가 바라보는 이 땅의 역사를 접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신간이 눈에 띄었고,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이렇게 책을 손에 들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도서관에 비치된 『뉴라이트 비판』,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밖에서 본 한국사』를 대여 도서목록에 올렸다.
『오랑캐의 역사』는 중화 제국과 오랑캐의 대립과 교섭의 역사로 중국의 문명사를 바라보았다. ‘중국中國’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서주시대 청동기 명문 〈宅玆中國〉이란 구절이다. ‘가운데 나라’에서 나라는 국가가 아닌 하나의 지역을 뜻한다. 그리고 차츰 ‘중화의 영역’이란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사는 세상을 세계의 중심 ‘중화中華’로 나머지는 ‘이夷(오랑캐)’로 불렀다.
중원의 국가가 강력하면 유목사회(오랑캐)는 중화제국 안에 진입하는 ‘내경전략’을 취했다. 당나라에 무력을 제공한 돌궐이 대표적이다. 엄청난 물량을 제공받는 대가로 다른 오랑캐의 침입으로부터 보호자 역할을 수행했다. 중원이 혼란스럽거나 힘이 약해지면 오랑캐는 제국을 침략하는 ‘외경전략'을 취했다. 북위, 요, 금, 원, 청은 오랑캐 왕조로 중국을 지배했다. 중국은 서양을 ‘양이洋夷’로 불렀는데 이는‘바다오랑캐’로 인식한 것이다. 천하체제의 주인으로 자신들이 서양오랑캐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오판이었다. 19세기의 서양세력의 힘은 무시무시했다.
나아가 중국 및 동․서양과 모두 교류한 이슬람 세계, 그리고 부제 ‘만리장성 밖에서 보는 중국사’를 뛰어넘는 근대이후 서양의 흥기와 침략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저자는 서양 흥기의 원동력을 신대륙 발견, 식민지 개척에 더해 ‘열린 시스템’을 들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닫힌 시스템’의 중국이 ‘해금海禁’ 정책을 펼친 반면, 서양은 대항해시대 이후 새로운 영토로 끊임없이 진출했다. 그러나 역사에서 ‘열린 시스템’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저자의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현재 전 세계적 기후생태 위기는 ‘열린 시스템’ 때문이다. 자기만족을 모르는 서양의 ‘열린 시스템’에 대한 탈근대, 탈중심 논의는 유럽 중심의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다. 이제 중국의 ‘닫힌 시스템’의 역사적 의의를 성찰해 봐야 한다.” 그렇다. 우리가 숨가쁘게 달려온 산업화, 근대화는 유럽중심주의의 내면화였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은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던 저자가 바라본 한국사였다.
한漢나라는 남월에 9군을, 조선에 4군을 설치했다. 남월은 중화제국에 편입되었는데, 조선은 4군을 축출하고 한반도는 독립국가로 발전했다. 이 차이는 한나라(220) 멸망 후 중국북부가 ‘5호16국 五胡十六國’의 ‘오랑캐 시대’로 접어든 반면, 중화제국이 국력회복을 남방개혁에서 찾은 데 있었다. 이는 남월지역의 한화漢化가 빨라졌고, 조선은 중화제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독자적 발전의 길을 걸었다.
정벌 당시 적극적 의지를 보였던 당나라가 느슨한 기미정책으로 물러선 이유는 당나라 조정의 문민화가 그 배경이었다. 고구려를 무너뜨린 후 당제국이 공격적 대외정책을 거두었던 것이 한반도의 독립․유지의 조건이 되었다. ‘서희徐熙의 담판’(663)으로 강동6주江東六州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발해멸망 후 여진족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요나라가 고려에 바란 것은 여진에 대한 견제였다. 무명옷은 막 개발된 첨단상품이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몰래 들여왔다는 것은 재미를 위한 이야기일 뿐이다. 원 제국의 일부였던 고려에서 의복의 편리함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원나라가 취할 정책이 아니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0) | 2023.03.31 |
---|---|
식량위기 대한민국 (0) | 2023.03.30 |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0) | 2023.03.28 |
오세암 (0) | 2023.03.27 |
나무예찬 (0) | 2023.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