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지은이 : 최지인
펴낸곳 : 창비
인간적인 눈물을 찾아볼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슬픔과 고통으로 비명이 가득찬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인들은 희망 없는 ‘미래’를 기발한 언어로 읊조리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모순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이 땅에서, 짓눌린 삶을 살아가는 ‘비정규직 청년 세대’의 목소리를 나는 찾고 있었다. 온라인 서적에서 신간 시집을 훑어보다 우연히 만난 시집이었다.
최지인(崔志認, 1990 - )은 2013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첫 시집 『나는 벽에 붙어 잤다』(민음사, 2017) 이후 5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었다. 3부에 나누어 41편의 시가 실렸다. 문학평론가 이경수는 해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에서 시인을 “2020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일과 사랑과 아픔을 표상”한다고 평했다. 뒤표지 표사는 음악인 이승윤이었다. 그는 시인을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나 꿈을 꾸고, 일이라는 굴레를 회의하면서도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슬퍼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표제는 「컨베이어」(68-71쪽)의
일하고 / 일하고 / 사랑을 하고 / 끝끝내 / 살아간다는 것을 / 들것에 실려 나가기 전에
12연에서 따왔다. 시인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꾸려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렸다. 삶의 구체적인 경험이 낳은 진솔한 목소리로 날것 그대로, 생생하고 적확한 언어로 표현했다고 평가받았다. ‘양심 있는 지식인들은 노예제도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임금은커녕 마음대로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코러스」(54-56쪽)의 8연이다. 그렇다. 노동을 팔아 임금을 벌 수 없다면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는 것이 각자도생의 이 땅에 내팽개쳐진 청년세대의 삶이었다.
시집을 열면 표지그림에 대한 짧은 설명이 나온다. 김은정의 2022년작 「녹는 점」은 33.5x24.5㎝, 종이에 유채. 겹쳐지고 포개지는 시집 속 이야기를 표현했다고 한다. 시집은 제40회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이었다. 신동엽문학상은 유족과 창비가 공동 제정했다. 등단 2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이의 최근 2년간 작품을 심사해 선정했다. 마지막은 「생활」(90쪽)의 전문이다.
아픈 사람이 많아서 / 오래 기다려야 했다 진료실 바깥에서 / 환자들 서로 힐끔거리며 //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 믿음이 안 간다 // 언젠가 내 곁은 떠나더라도 / 경건히 // 벌써 몇 해가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