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대빈창 2023. 4. 20. 07:00

 

책이름 :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

지은이 : 정동주

펴낸곳 : 한길아트

 

작가 정동주(鄭棟柱, 1948- )는 나에게 인문학자로 기억되었다. 그는 수십 권의 시집․소설을 발표했다. 학창시절, 소설 『백정』, 『단야』에 눈길은 갔지만 그뿐이었다.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은 90년대 초부터 그가 쏟아낸 수많은 인문학 책에서 유일하게 내가 잡은 책이었다. 초판은 2001. 8. 25.로 내가 잡은 책은 한 달 뒤에 나온 2쇄였다.

겉표지를 열자 뜬금없이 신문 스크랩이 접혀있었다. 2002. 9. 14. 토요일 〈중앙일보〉 기획기사 ‘판’이었다. 헤드라인은 -‘이도차완’ 전설을 빚는다 - 였다. 경남 하동 ‘길성 요지窯趾’의 길성․길기정 부녀가 ‘이도차완井戶茶碗’을 재현했다는 기사였다. 책은 독자의 눈을 맑게 하는 도판 130여점과 ‘명품 이도차완 40점’의 사진이 실렸다. 그중 4장이 현대에 재현된 이도차완의 이미지였고, 사진은 권태균이었다. 신문기사의 사진을 찍은이와 동일 인물이었다.

90년대의 책과 신문은 모두 ‘이도차완井戶茶碗’으로 쓰였다. 그 후 내가 잡은 책과 활자들은 ‘이도다완井戶茶碗’으로 읽었다. ‘기자에몬오이도가 한쪽으로 기운 듯한 것은 성형 때부터 그랬고, 유약은 가마 주위의 장석長石을 퍼다가 나무재 한줌 섞었고, 매화피는 유약을 입히면서 굽깎기의 세련미와 함께 만들어낸 신비다.’(152쪽) 일본 국보 ‘기자에몬이도’는 교토京都 다이도쿠샤大德寺 고호안孤蓬庵에 전해 내려오는 일본국보 이도다완井戶茶碗이다. 작가는 1994. 6. 11. 11時. 한국인으로서는 400년 만에 처음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도다완이란 말이 최초로 쓰인 것은 1578. 10. 25. 야부노우치藪內 종화회宗和會였다. 현재 일본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가 흔히 부르는 막사발은 200여점, 이중 일급 일본 보물이 3점, 이도다완으로 역사가 기록되어 전해지는 것이 70점, 이중 일본문화재로 등록된 것이 20여점이다. 에도시대의 3대 명품은 천하 제일의 대명물 찻잔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 9.1x5.3-15.5㎝, 쓰츠이 준케가 도요토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친 쓰츠이즈츠이도筒井筒井戶 9.8x15.5㎝, 대마도주 종가에 전래되는 쓰시마이도對馬島井戶 8.6x14.4㎝이다.

책은 한 지역에서만 독특한 형태로 제작되어 제한적인 범위와 시간 안에서 유통되다가 소멸해버린 이도다완의 역사를 쫓았다. 무엇에 쓰는 그릇인지, 어느 곳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연원은 무엇인지, 비파색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토록 희귀해진 이유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사람은 누구인지, 경남 남해안 지역에서만 파편이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일곱 가지 비밀을 캐는 여정이었다.

경남 사천泗川은 가야시대 남방(소승)불교의 독특한 문화가 번성했던 지방이었다. 발우鉢盂는 승려의 식기로 탁발을 행할 때나 불전에 공양을 올릴 때 사용하던 그릇이었다. 발우는 수행자의 몸을 유지시켜 주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므로 매우 엄격한 상세한 계율에 따라 제작되고 사용되었다. 연한 황토색은 소승불교에서 사용하는 승려들의 가사袈裟 색깔이었다. 16세기, 한 승려 사기장은, 약 2천년 전 석가모니의 법문대로 처음 만들어졌던 흙발우를 오랜 발원 끝에 재현한 것은 아닐까. 차도의 대가 센노 리큐(千利休, 1522-91) 선사의 애장품이었던 고요노此世 향로는 이도다완의 쓰임새가 옛 절간의 발우였음을 짐작케하는 유물이다. 이도다완은 오랜 연원을 지닌 승려들의 법물法物로서 만다라의 법에 따라 제작된 불교미술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