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쇳밥일지
지은이 : 천현우
펴낸곳 : 문학동네
『쇳밥일지』는 지방청년 노동자 천현우(1990- )의 첫 산문집이다. 『주간경향』에 연재했던 ‘쇳밥일지’와 ‘쇳밥이웃’을 책으로 엮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2022년 봄까지를 담아낸 한 청년노동자의 내밀한 기록이다. 청년노동자의 고달픈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 준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의 저자 양승훈은 추천사에서 말했다. “지방제조업 도시의 ‘너무한’ 사연을 담은 문화기술지, 부당함과 우여곡절 속에서 ‘쇳밥’을 먹으며 성장한 청년 용접 노동자의 ‘일지’”라고.
천민자본주의의 이 땅에서 ‘흙수저(?)- 이 단어도 과하다’로 태어나 극단적인 가난 속에서 생모의 폭력과 월세 여인숙을 전전하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 눈물겹다. 생지옥같은 삶을 버텨내고 여기까지 도달한 그의 삶이 내게는 기적처럼 보였다. 가난을 탈출하려 실업계고교를 나와 창원기능대(한국 폴리텍 7대학 창원 캠퍼스)에 진학했다. 노동자 계급의 출발은 1학기를 마치고 방학 때 들어간 노키아가 시작이었다. 그후 그의 공장 이력은 의료기기 중소기업, SNT중공업 하청업체, 양산 ISO 탱크 컨테이너 정비업체, 현대로템 하청업체, 볼보 하청업체 등을 전전하는 열악한 중소기업 생산직 노동자였다.
“‘용접’. 녹여서 붙인다는 뜻처럼 용접봉이 지난 곳은 열이 식으면서 철과 철 사이가 메꾸어집니다. 쇠에다 대고 하는 바느질이라고 생각하심 편할 거예요.······. 잘된 용접은 금속판 위에 그린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용접사는 예술가와도 닮아 있습니다.”(264-265쪽) 작가가 경기 이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한 말이다. 작가를 용접의 세계로 이끈 사람은 조경 노가다 ‘포터 아저씨’였다. “배워두면 도움이 된다. 돈은 안 돼도 손맛은 죽인다”는 소리에 피가 끓어 4개월 코스의 프로웰드 용접학원에 접수하고 피나는 훈련 끝에 용접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살벌한 노동 강도, 최저 임금에서 꿈쩍않는 시급,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경력, 한 번 당하면 생계와 생명을 위협받는 산재, 공장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귀족 정직원과 천민 하청직원. 샤워실도, 통근버스도 제공되지 않아 잔업 노동으로 지친 몸에 땀에 찌든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버스로 퇴근하는 서러운 하청업체 노동자의 삶. 섭씨 400도 온장고에서 나온 수지가 발등에 떨어졌지만 사장은 동네의원으로 끌고 가 파상풍 주사와 항생제만 맞혔다. 그리고 2만원을 쥐어주면서 내일 나오라고 선심을 쓰는 광경이 이 땅 지방공단 노동현장의 진짜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에 과장이 10ton 철판을 크레인으로 옮기던 중 뒷다리를 덮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작가는 얼이 빠졌다. 그리고 그날 일기장을 사 점심시간 야외주차장 커다란 바위에 앉아 노동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의 현장모습을 촘촘하게 그려나갔다. 2030 노동자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왜 절망과 냉소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했다.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alookso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alookso는 참여자들의 집단 지성을 통해 같은 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맥락을 제시하는 걸 목표로 삼는 미디어 스타트업 회사였다. 노동자 작가는 생각했다. ‘괴짜 같은 기자’가 되라는 의미라고.
책은 작가를 용접의 세계로 이끈 ‘포터 아저씨’와의 인터뷰로 끝났다. 삼겹살 안주로 소주를 들이키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조경 노가다로 목에 풀칠을 하는 그가 노동자 작가의 글을 이렇게 평했다. “우리가 그리 욕해도 결국 가진 놈들은 먹물이잖냐? 그 먹물들이 원하는 양식미라는 게 또 있을 거 아니냐. 우리 얘기를 먹물들 언어로 번역해야 해. 좀 아니꼬워도 세상은 그렇게 바꾸는 거지. 넌 그게 되더라. 그래서 니가 중요한 거야. 쇳밥 얘기를 먹물들 알아먹게 쓸 수 있으니까.”(283-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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