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대빈창 2023. 5. 3. 07:00

 

책이름 :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

지은이 : 강명관

펴낸곳 : 푸른역사

 

내가 잡은 책은 2001. 12. 12. 초판1쇄로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절, 나는 우리나라 옛그림에 관한 수많은 책과 도록을 잡았다. 그 책들이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분명 이 책도 ‘혜원蕙園’에 끌려 손에 넣었을 것이다. 한문학자 강명관(姜明官, 1958 - )은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통해 조선시대 생활상을 들여다보았다. 54점의 조선시대 풍속화, 진경산수화, 초상화, 문인화를 비롯한 조선시대 의복, 서책 등 사진자료들은 독자들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 세계로 안내했다.

혜원의 그림은 고작 50-60점이 전해질 뿐이다. 저자에게 국보 제135호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에 실린 30점의 그림은 조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서른 장의 스냅사진이었다. 조선 사람들의 유흥 풍속인 기방, 도박, 놀이, 섹스 등의 원초적인 삶의 모습을 재생시켰다.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는 각 장에 나누어 실린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의 30장에 대한 그림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친다.

1장 ‘먼저 몇 마디’는 풍속화風俗畵는 문자 그대로 풍속을 그린 그림으로 속화俗畵라고도 한다. 풍속화는 인간의 모습을 화폭 전면에 채우는 그림으로 인간을 그림의 중심에 놓았다. 2장 ‘과부’의 〈이부탐춘嫠婦貪春〉은 몸종과 함께 개의 짝짓기를 엿보는 상중의 여인을 그린 그림으로 과부의 배시시 웃는 표정은 내밀한 욕망을 드러냈다.

3장 ‘춘정과 유혹’의 〈정변야화井邊夜話〉는 한밤중에 물을 긷는 아낙들을 훔쳐보는 양반, 〈소년전홍小年剪紅〉은 봄날 후원에서 양반가의 젊은 서방이 젊은 종년의 손목을 잡아채며 희롱, 〈춘의만원春意滿園〉은 젊은 양반이 여인의 나물바구니에 손을 넣는 장면. 4장 ‘밀회’의 〈월하정인月下情人〉은 통행이 금지된 한밤중 두 남녀의 은밀한 만남, 〈월야밀회月夜密會〉는 복잡하고 내밀한 애정관계를 암시한 한밤중의 세 남녀의 만남.

5장. ‘개울가의 여인들’의 〈단오풍정端午風情〉은 단오날 개울가에서 그네타고 머리감는 풍속. 〈계변가화溪邊佳話〉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젊은 여인네를 곁눈질하는 한량, 〈표모봉욕漂母逢辱〉은 빨래하는 젊은 아낙에게 다가가려는 젊은 상좌를 말리는 늙은 할미. 6장. ‘선술집’의 〈주사거배酒肆擧盃〉는 선술집에서 별감은 안주를 집고, 주위 인물들은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며, 나장과 또 한 사람은 그만 마시고 가자고 성화를 부리는 장면.

7장 ‘기방 풍경 1’의 〈청루소일靑樓消日〉은 기루의 탕건 쓴 방안의 남자와 툇마루의 생황을 쥔 여자가 집안으로 들어서는 기생을 바라보고, 〈기방무사妓房無事〉는 기생이 외출했다 돌아오는 사이 몸종과 오입장이가 일을 벌리고 있다가 황급히 이불을 덮고, 〈홍루대주紅樓待酒〉는 기생 한 명과 젊은 남자 셋이 앉아있고, 중년 여인이 술을 사오는 기방 풍경, 〈유곽쟁웅 遊廓爭雄〉은 기방 앞에서 난투극이 벌어진 후의 장면. 8장. ‘기방 풍경2’의 〈야금모행夜禁冒行〉은 기부의 기생을 관리하는 별감이 양반 손님에게 기생을 딸려 보내고, 〈삼추가연三秋佳緣〉은 젊은 양반이 기생의 초야권을 사는 장면.

9장. 양반들의 유흥상‘의 〈청금상련聽琴賞蓮〉은 고급 주택의 후원에서 양반 셋과 기생 셋이 가야금을 뜯으며 유흥을 즐기고, 〈상춘야흥賞春野興〉은 어느 봄날 지체높은 양반들이 기생과 악공을 불러 한바탕 즐기고, 〈쌍검대무雙劍對舞〉는 검무를 추는 기생, 〈납량만흥納凉漫興〉은 양반들이 흐트러진 자세로 악공들의 음악에 몰입한 광경. 10장. ’선유와 유산‘의 〈주유청강舟遊淸江〉은 양반들이 기생을 데리고 선유 놀이하는, 〈연소답청年小踏靑〉은 젊은 축들이 봄날 경치 좋은 산을 찾아가고, 〈휴기답풍携妓踏楓〉은 양반집 자제가 기생과 단풍놀이를 떠나는 장면.

11장. ‘투호와 쌍륙’의 〈임하투호林下投壺〉는 양반 젊은이 셋과 기생 한 명이 투호를 즐기고, 〈쌍륙삼매雙六三昧〉는 남자들이 야외로 기생을 데리고 나와 쌍륙놀이하는 장면. 12장. ‘절과 여인’의 〈문종심사聞鐘尋寺〉는 계집종과 말구종을 대동한 양반집 여인이 절을 찾아가고, 〈이승영기尼僧迎妓〉는 장옷 쓴 여인이 계집종과 절에 가는 길에 삿갓 쓴 비구니가 마중나온 모습.

13장. ‘굿과 법고’의 〈무녀신무巫女神舞〉는 춤추는 무당과 두 명의 박수가 악기를 연주하는 굿, 〈노상탁발路上托鉢〉은 기생 패거리가 마주한, 법고를 치며 탁발하는 무리, 〈노중상봉路中相逢〉은 상민 또는 천민의 패랭이를 쓴 두 남자와 삿갓을 쓰거나 든 두 여자가 길에서 만난 장면. 책을 읽다가 나는 새로 알게 된 사실에 밑줄을 그었다. ‘선술집’은 주당들이 모두 서서 술을 마시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검무’는 두 여자가 군복에 전립을 쓰고, 칼 두 자루를 들고 추는 춤이었다. ‘쌍륙’은 주사위 두 개를 굴려 나는 숫자대로 말을 굴려 상대방의 궁에 먼저 들어가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독서가들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을 서술한 책으로 네 권짜리 독일의 역사가 에두아르드 폭스의 『풍속의 역사』를 떠올릴 것이다. 책은 2010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표제가 『조선풍속사 3』로 내가 잡은 초판의 표제는 ‘부제’로 물러났다. 『조선풍속사 1』의 부제는 ‘조선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로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의 풍속화를, 『조선풍속사 2』의 부제는 ‘조선사람들, 풍속으로 남다’로 기산 김준근과 조선 후기 풍속화를 중심으로 조선풍속사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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