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검은 노래

대빈창 2023. 4. 26. 07:00

 

책이름 : 검은 노래

지은이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옮긴이 : 최성은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는 나에게도 특별한 시인이었다. 책장에 수백 권의 시집이 어깨를 겨누었지만, 외국 시인의 시집은 고작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정서 이입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그동안 기피했던 독서분야였다.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에 소개된 시인의 시선집 세 권 모두를 손에 잡았다. 시집들은 우리에게 쉼보르스카를 알게 해준 폴란드문학연구자 최성은이 옮겼고,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냈다. 시선집 『끝과 시작』(2007), 유고시집 『충분하다』(2016), 그리고 초기작들이 실린 『검은 노래』(2021) 였다.

쉼보르스카는 1945. 3. 4. 〈폴란드 데일리〉에 「단어를 찾아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에서 『여기』(2009)에 이르기까지 12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쉼보르스카는 1944-1948년에 쓴 시들을 모아 1949년 데뷔시집을 준비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출간되지 않았다. 2012년 시인이 타계한 후 초기작을 모은 원고뭉치가 발견되었다. 1970년 전 남편이 보낸 생일 선물은 시인의 초기작들을 모아 타이프라이터롤 옮기고 집필 연도를 기재한 가편집본이었다. 초창기 시인의 생각과 고민을, 시적 모티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자료였다. 『검은 노래』는 미발간 초기작들과 정규시집 가운데 아직 국내에 번역․소개되지 않은 유품들을 연대별로 실었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시인은 〈폴란드 데일리〉 편집국을 찾아가 자신의 원고를 전달하면서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황급히 사라졌다고 한다. 시인은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에 노벨상 메달을 곧장 찬장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굴레에 갇혀 자신의 작품 활동이 위축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세계 각국의 출판사들이 시인의 작품을 번역․출판하기 위하여 저작권을 요청했을 때, 시인은 한 가지 전제조건을 내세웠다. 1950년대 전반기에 출간된 두 시집은 번역하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정치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혔던 젊은 시절에 대한 뼈아픈 회한 때문이었다.

옮긴이 최성은은 해설 「어느 위대한 시인의 수줍은 첫걸음」의 첫 단락을 이렇게 시작했다. ‘세상 만물에 대해 끝없는 애정과 호기심을 보여 준 시인, 가치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상식과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면서 대상의 참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한 시인.’(183쪽) 마지막은 등단작 「단어를 찾아서」(19-20쪽)의 1․2․3연이다.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 하지만 어떻게? /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 그 어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전하다. //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 피 끓는 증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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