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대빈창 2023. 4. 25. 07:00

 

책이름 : 정확한 사랑의 실험

지은이 : 신형철

펴낸곳 : 마음산책

 

시인이나 소설가가 가장 글을 받고 싶어 한다는 문학평론가 신형철(1976- )의 책을 처음 읽었다. 시집이나 소설의 말미에 실린 해설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었던 평론가의 단행본을 잡겠다는 생각은 그때뿐이었다. 신형철은 문학계간지 『문학동네』 2005년 봄호에 소설 평론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어느덧 문학평론가는 다섯 권의 책을 냈다.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문학동네, 2008), 첫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 영화평론집 『정확한 사랑의 실험』(마음산책, 2014), 두 번째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 2018), 詩평론집 『인생의 역사』(난다, 2022).

새로 문은 연 《지혜의숲》 도서관에 문학평론가의, 신간도서를 제외한 책 네 권이 비치되어 있었다. 말그대로 도서관이 지혜롭게 보였고,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가장 부피가 얇은 책부터 빼들었는데 영화평론집이었다. 신간은 희망도서 목록에 올렸다. 이제 문학평론가의 글을 섭렵해야겠다. 어는 글에서 만났던 ‘이 시대의 문인들이 가장 글을 받고 싶어하는 문학평론가라는 찬사’를 듣는 글을 접한다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한 권 한 권 출간순서에 메이지 않고 책들을 읽어나가야겠다.

눈길을 끄는 표지그림은 베르나르 포콩의 〈열아홉 번째 사랑의 방〉으로 낡은 방구석에 이불과 꽃다발과 동전이 흐트러졌다. 헌사獻辭는 결혼을 앞둔 신부 문학평론가 신샛별과 장인․장모께 드렸다. 뒤표지 추천사는 영화감독 박찬욱과 영화평론가 김혜리의 몫이었다. 영화감독은 말했다. “나는, 내가 비평가가 되어 그 영화들을 보고 썼다면―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노력의 최대치에 도달했다면―똑 이렇게 썼겠다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이 표현해놓은 대목과 맞닥뜨릴 때면 좀 무섭기까지 했다.”

문학평론가에게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늘 작품을 앞에 세워두는 글쓰기였다. 그에게 장승리의 시 「말」의 한 구절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는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여기서 표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태어났다. 책은 약 2년간 『씨네21』에 발표했던 19편과 다른 매체에 실렸던 3편을 합한 22편에, 영화 29편를 이야기했다. 책의 구성은 주제와 성격에 따라 4부로 나누었고, 부록으로 2편의 글을  덧붙였다. 

1부 ‘사랑의 논리’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26쪽)고 자크 오디아르의 2012년작 〈러스트 앤 본〉에서 評했다. 2부 ‘욕망의 병리’는 김기덕의 2013년작 〈뫼비우스〉와 홍상수의 2012년작 〈우리 선희〉를 비교하며, “욕망과 관련해서 김기덕은 몸의 실패를 다루고 홍상수는 말의 실패를 다루는데, 김기덕은 몸의 실패를 비관적으로 심화시키고 홍상수는 말의 실패를 낙관적으로 다독인다.”(98쪽)라고 했다.

3부 ‘윤리와 사회’는 조성희의 2012년작 〈늑대소년〉에서 “진정으로 윤리적인 태도는, 선의 기반이 사실상 허약하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악의 본질이 보기보다 복합적이라는 섬세하게 수용하면서 ‘선의 악’과 ‘악의 선’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태도일 것이다.”(161쪽)라고 말했다. 4부 ‘성장과 의미’는 “어떤 존재의 처지가 주인이냐 노예냐 하는 것이 그가 자기 삶에 대해 주인인지 노예인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 노예에게 주인인 자가 삶에 대해 노예일 수 있고, 주인에게 노예인 자가 삶에 대해 주일일 수 있다는 것”(224쪽)이라고,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을 풀어냈다.

부록의 ‘Passion of Judas, 혹은 스네이프를 위하여’는 데이비드 예이츠의 2011년작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 〉에 등장하는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규범적인 코드의 영화에서 단 하나의 예외적인 비극적인 인물로 설정된 것을, ‘시간을 다루는 영화적 마술의 한 사례’는 정지우의 2005년작 〈사랑니〉를 “이 세상을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 의미들을 제 안에 품고 있는지를 경이롭게 느끼”(240쪽)게 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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