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천일馬화
지은이 : 유하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 『천일馬화』는 나에게 시인의 네 번째 책이었다. 산문집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시집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 이어. 〈문학과지성 시인선〉의 트레이드마크인 컷이 생경하다. 앞날개를 뒤적였다. 그린이가 눈에 익은 이제하가 아닌 김영태였다. 2000년도에 출간된 시집을 이제 잡다니. 시집은 ‘천민자본주의의 치부와 한국의 정치․문화에 대한 시인 특유의 조롱과 까발림, 날카로운 풍자’가 넘쳐났다. 『천일馬화』는 〈스포츠서울〉에 연재되었던 배금택의 만화 제목이었다.
나는 표제에서 천일야화(千一夜話,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했다. 부정을 저지른 왕비의 배신감에 치를 떤 샤리아르 왕의 분노를 가라앉힌 세헤라자드의 천일하루의 이야기. 「천일馬화―걸리버 여행기」의 한 구절은 ‘마헤라자드가 말했다. 원수진 놈 있거들랑 경마장에 데리고 가라고’였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해설 「말달리자, 말달리자」에서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말의 운명은 끊임없이 지껄여야 하는 이야기꾼의 운명과 닮아 있다. 그러므로 ‘천일馬화’란 끝없이 달려야하는 말들의 이야기이면서 또한 영원히 이어져야 하는 이야기의 전형적인 속성 그 자체”(121쪽)라고 말했다.
오래전 함민복 시인이 ‘시인 유하와 경마장’에 대한 추억을 얘기했다. 90년대 문단의 총아로 주목받던 시인은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그때 두 시인은 주말을 경마장에서 보냈다고 한다. 「천일馬화―The Waste Land」의 한 구절 ‘사내는 말들이 잊혀질 때까지 해풍에 머리를 헹군다’는 함민복의 「해변의 경마」에서 인용했다. ‘결막염을 앓는 한 시인을 경마장에서 만났지 / 그의 눈에 비친 나 역시 血眼이 되어 있었다’ 그 시절 함민복 시인은 결막염을 앓았을까. 「천일馬화―1800M 1군 핸디캡 연령 오픈 일반 경주 발주 10분 전 경마 예상가 金馬氏를 만나다」의 한 구절은 시인 함민복의 「긍정적인 밥」를 패러디했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 천 배당에 쑤셔넣으면 남들 두 달 월급인데 / 생각하면 마음은 어느새 드넓은 주로가 되네
시집은 1부에 28편, 2부에 32편이 실렸다. 1부의 소제목은 ‘천일馬화’로 연작시 7편이, 2부의 소제목 ‘자전거의 노래를 들어라’는 연작시 7편이 실렸다. 1부는 말들의 질주가 일으키는 요란한 흙먼지를 닮은 시편들이, 2부는 자전거 산책의 시간이 흐르는 명상 시편들이 모였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시 「폭포」(9쪽)의 전문이다.
그대는 무진장한 물의 몸이면서 / 저렇듯 그대에 대한 목마름으로 몸부림을 치듯 / 나도 나를 끝없이 목말라한다 / 그리하여 우리는 / 한시도 벼랑 끝에 서지 않은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