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박용래 시전집
엮은이 : 고형진
펴낸곳 : 문학동네
나에게 박용래(朴龍來, 1925-1980)는 ‘술꾼’과 ‘눈물 많은 시인’으로 인상지어졌다. 그렇다고 그의 시를 즐겨 잡은 것도 아니었다. 《민음사》에서 〈오늘의 시인 총서 7〉로 나온 『강아지풀』을 개정판 3쇄(2007. 6. 25)로 잡았을 뿐이다. 시인의 이야기가 실린 짧은 글을 어디선가 두세 편 읽었을 것이다. 겨울이 서서히 물러나는 2월말 경이었다. 3주 만에 나선 읍내 행에서 도서관에 들렀다가 눈에 뜨인 책이었다. 원래 도서 대여목록에 없었다.
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들이닥친 소용돌이가 행간을 더듬는 책읽기에 몰입할 수 없었다. 국문학자 고형진은 시인의 전모를 담은 책 세 권을 한꺼번에 선보였다. 『박용래 시전집』, 『박용래 산문전집』, 시인의 문학적 일대기를 담은 『박용래 평전』. 국문학자의 6년간의 자료 조사는 시인이 생전에 발표했던 시와 산문 작품, 미발표 원고, 편지 등을 망라했다. 시인의 전기적 사실과 증언을 참조해 그의 문학세계를 조망했다.
시인은 1925년 충남 강경에서 태어났다.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입사했으나, 퇴직하고 시 쓰기에 전념했다. 1955-1956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여 등단했다. 31세였다. 1969년 첫 시집 『싸락눈』, 1975년 『강아지풀』, 1979년 『백발의 꽃대궁』을 펴냈다. 1980년 55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세 권의 시집뿐인 과작寡作의 시인이었다.
제법 두꺼운 양장본의 『박용래 시전집』을 열면 강경상업학교 재학시절 시인의 모습부터 묘비까지, 조각가 최종태가 그린 시인의 컷, 육필 원고, 생전 출간 시집 등 24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시전집은 시인의 생전에 발표한 작품과 유고작, 시작노트의 미발표 작품 등 모두 208편의 시가 실렸다. 국문학자는 최종 수정본을 정본으로 삼았다. 부록에 수정 전의 모든 판본을 함께 싣고, 수정 대목을 각주로 실어 개정 과정이 일목요연했다.
시인은 사라져가는 가난하고 여린 것들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과 연민이 깔린 1960-70년대 한국적 서정의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엮은이는 말했다. “모더니즘, 리얼리즘 위주의 당대 문단에서 덜 주목받았지만, 박용래의 뛰어난 작품은 시대를 넘어 살아남았다.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제대로 살려주고 싶었다.” 마지막은 「겨울밤」(26쪽)의 전문이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밑 달빛은 쌓이리. // 발목을 벗고 물은 건너는 먼 마을. //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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