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지은이 : 김윤영
펴낸곳 : 후마니타스
빈곤사회연대는 철거민, 노점상, 장애인, 홈리스, 쪽방 주민들과 함께하는 여러 단체들의 힘을 잇고 모으는 일을 하는 단체다. 김윤영은 빈곤사회연대에서 2010년부터 활동하는 14년차 반빈곤활동가다.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은 그가 자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싸우며 쌓아올린 기록이었다. 그는 말했다. “서울의 아파트가 있는 자리라면 누군가는 이곳에서 쫓겨났다고 봐도 좋다, 서울에서 개발은 집 없는 사람들을 탈락시키는 일이었다.”
‘경의선 숲길 1’은 철거민 강정희의 이야기다. 경의선 숲길은 용산구 원효로에서 마포구 연남동까지 6.3㎞에 이르는 기다란 공원이다. 서울 도심의 기다란 땅은 원래 철길이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2021년 3월 현재 이 공원주변 200m 반경에는 1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만 32개가 밀접해 있다. 2004년 신계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 사업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뿌리 뽑았다. 재개발조합은 세입자를 몰아내려, 용역깡패와 철거반을 투입했다. 돈도 갈 곳도 없는 그녀는 버텼다. 잠시 외출한 사이 강정희의 집이 철거되었다. ‘경의선 숲길 2’는 칼국수집 두리반 안종녀의 이야기다. 경의선 숲길의 대표구간 이곳에 강제철거 용역 30여명이 나타났다. 일대가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들은 가게를 펜스로 가두고 자물쇠로 잠갔다. 크리스마스날 그녀는 절단기로 문을 따고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전기도 물도 끊어진 곳에서 531일 농성의 시작이었다.
‘아현포차와 박준경의 기억’의 박준경은 1981년생으로 2008년부터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아현동 막다른 골목 끄트머리의 낮은 천장 단층집에 살았다. 일용직 박준경은 철거 위협으로 일을 나갈 수 없었다. 용역들은 어머니를 이불로 말아 들고 나왔고, 세간들은 트럭으로 어딘가로 실려 갔다. 모자는 엄동설한에 쫓겨났다. 박준경은 어머니에게 찜질방에 가시라고 5만원을 건네 뒤 한겨울 한강에 몸을 던졌다. 한 줌 재로 변한 박준경은 모란공원에 묻혔다.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입주민들의 민원에 손을 들어준 마포구청의 강제철거였다.
‘쪽방촌 주민의 기억’은 말수가 적었지만 어렵지는 않던, 1958년 김동선의 이야기다. 그는 겉으로 성질을 잘 냈지만 실은 사람을 미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경기 가평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의 주폭에 시달리다 10대에 집을 나와 노가다로 살며 쪽방과 거리를 오갔다. 그의 마지막 노동은 고물 수집이었다. 깨끗하게 손질한 100㎏ 박스로 받을 수 있는 돈은 3000원이다. 쪽방의 한 달 월세는 못해도 20만원이다. 술도 세고 자존심도 강한 그는 2020년 2월, 돈의동 쪽방에서 앉은 채로 발견되었다. 60여년의 고달픈 여정을 그렇게 마쳤다.
‘잠실포차 김영진의 기억’은 2012년부터 2년간 전국노점상전국연합 위원장 김영진의 이야기다. 그는 전주에서 태어나 대학졸업(법대 학생장 출신)후 노동법강사로 일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올림픽이 끝난 1989년 당시 석촌호수 인근에 무려 214개의 포장마차가 있었다. 4000명이 투입된 강제철거에 맞서 노점상들은 1989년 7월 22일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31세의 김영진은 목소리가 크고 말을 잘해 줄곧 사회를 맡았다. 그들은 각개격파당하기보다 잠실포차에 모여들었다. 전무후무한 철의 규율을 갖춘 새로운 장사 공동체였다.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의 기로에 설 때마다 가장 약하고 평범한 사람의 자리를 선택한 김영진이었다.
이외에도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한 용산4구역 재개발 현장, 개발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대문 형무소 맞은 편 옥바라지 골목의 현저동, 상계동 철거민을 포함해 72만 명을 쫓아 낸 서울올림픽, 코로나 19 대유행이후 거리 생활이 더욱 팍팍해진 서울역 홈리스, 청계천복개공사로 봉천동․신림동․난곡동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달동네사람’이 된 청계천 판자촌 사람들, 2012년 8월 21일부터 2017년 9월 5일까지 1842일을 이어온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광화문 농성까지.
80년대 이후 10년간 줄잡아 70만-80만 명이 판자촌을 떠났다. 이들 가운데 10%만이 새로 지은 임대․분양 아파트에 입주했다. 나머지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로, 쪽방촌으로, 비닐하우스로 뿔뿔이 흩어졌다. 신축 브랜드 아파트, 대형 쇼핑몰, 도심 공원은 중산층의 욕망에 따라 가난한 이들의 소망을 제물로 지어졌다. 개발 이득 카르텔이 누린 시세차익의 이면에는 헐값에 자기집에서 쫓겨난 사람들, 생계를 잃은 사람들, 정주할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눈물과 죽음이 있었다. 중산층 욕망을 채워주는 핫플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이 뭉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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