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Love Adagio
지은이 : 박상순
펴낸곳 : 민음사
《문학과지성사》의 시집 재출간 시리즈 〈문학과지성 시인선 R〉의 첫째권이 2012년에 선보였다. 나는 그때 시리즈를 한 권씩 사서 모았다. 1996년 《세계사》에서 펴낸 박상순의 두 번째 시집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의 재출간을 알렸다. 1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시인의 이름을 입력했다. 시인의 첫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가 살아있었다. 시인과의 첫 인연이었다.
빨간색 테두리를 한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드디어 재출간되었다. 그해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 2017)이 13년 만에 나왔다. 나는 재출간 시집을 손에 넣었다. 신간 시집은 언제라도 잡겠지하는 심정으로.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하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밤이, 밤이, 밤이』(현대문학, 2018)와 두 번째 시집 『Love Adagio』(민음사, 2004)를 연이어 잡았다.
Daum 백과를 열었다. Adagio는 악곡을 연주할 때 ‘느리고 평온하게’ 연주하는,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시집은 부 구분 없이 57편이 실렸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시집으로 겉표지가 없어 표사가 실렸는지 모르겠다. 해설․발문없이 詩만 온전히 담았다. '시인의 말'이 시집의 차례였다.
시는 가나다, 숫자, 알파벳 순으로 배열한다.
다만, 첫 시는 짧게,
마지막은 ‘마지막’이니까.
‘고독한 내 상상의 산맥 아래에서 가면을 쓴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 보티첼리가 그가 죽고도 몇백 년이 지나 아시아에서 쓰인 한 젊은 시인의 시구를 낭송한다. ―네가 떠날 때 바다는 그가 품었던 모든 물고기들은 수면 위로 밀어냈다. ―떠오르던 물고기들의 소음(騷音).’ 「침묵의 뿌리」(94-96쪽)의 일부분이다. 인용부분은 마지막 시 「피날레Finale」(132-133쪽)의 1연이기도 했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4~1510)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로 〈비너스의 탄생〉이 잘 알려졌다.
시인은 대학에서 서양회화를 전공했다. 시인은 말했다. “화가의 길을 걷다 시를 해야겠다 마음먹고 방향을 틀었어요. 기존 문인들과는 출발선도 성장 배경도 달랐던 거죠. 과거 한국 시가 사진 하나를 오래 들여다보는 방식이었다면 저는 이상한 렌즈를 클로즈업 하거나 전개가 빠른 사건을 영화처럼 묶어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나게 해요.” 문학평론가 故 황현산은 시를 이렇게 평했다. “시적 이미지의 기호화에 저항하는 단순성의 시”라고. 마지막은 표제시 「Love Adagio」(129쪽)의 전문이다.
아직 덜 마른 목재들이 마르는 소리
―그의 무른 몸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아직 덜 마른 그의 몸이 마르는 소리
―그의 불행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아직 덜 마른 짐승의 살이 마르는 소리
―아직 눅눅한 그의 몸이 내 지붕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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