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낮은 데로 임한 사진
지은이 : 최민식
펴낸곳 : 눈빛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 최민식 선생(1928 ~ 2013)의 별세 소식을 듣고 손에 넣었던 책이 『HUMAN』(1957-2006, 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이다. 벌써 10여 년 저쪽의 세월이 흘렀다. 단순소박한 나날을 보내던 나의 삶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맞추었던 선생의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집․산문집 두 권을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했다. 『낮은 데로 임한 사진』(2009)의 부제는 ‘나의 인생․나의 사진’으로 1부와 2부에 나뉘어 38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 1957년작 ‘담 모퉁이에서 맨발로 급히 국수를 들이켜는 계집애’부터 부산, 2007년작 ‘절마당으로 보이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간구하며 기도를 올리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담은 31컷의 사진이 실렸다.
1부 17편의 글은 초지일관 서민들의 삶을 렌즈에 담아 온 사진가의 이야기였다. 사진가는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1955년 일본 밀항을 감행했다. 도쿄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며 도쿄중앙미술학원에 야간부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어느 일요일 그의 인생을 바꾼 책을 만났다. 도쿄 헌책방에서 우연히 룩셈부르크 출신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사진집 『인간 가족』이 눈에 뜨였다. 사진집에 미친 그가 반세기동안 카메라를 둘러 멘 계기였다. 1957년 귀국한 그에게 두 분의 신부는 절대적이었다. 소 알로이에 신부가 운영하는 부산 〈소년의 집〉의 사진사가 그의 첫 직장이었다.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천주교 왜관수도원의 독일인 신부 임 세바스틴 신부는 극비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산 남포동 해변의 자갈치 시장, 새벽잠을 물리친 부전역 완행열차의 억척 아지매와 할머니들, 무성한 갈대와 철새의 1960년대 낙동강 을숙도, 50년대말 용두산․수성동․범일동․영도 등지의 산기슭에 온갖 잡동사니로 이어붙인 판자집, 동양에서 제일 큰 사창가 부산 완월동,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민주화투쟁 현장. 그의 발길이 매일 머물렀고, 항상 카메라의 렌즈가 맞추어졌다.
2부는 사진가의 사진 철학과 예술론을 엿볼 수 있는 글 21편을 실었다. 세상 어느 매체보다 사진은 인간의 근원적인 진실을 발언한다. 사진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한평생을 고통스런 도전과 맞닥뜨리는 길고도 힘겨운 과정을 겪었다.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가슴으로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생활에 지쳐서 게을러지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아서 게을러지는 것이다. 예술은 특히 죽음과 삶 혹은 자아의 상실과 실현을 둘러싼 긴장과 조화의, 인간 삶의 보편적인 얼개와 의미를 드러내야 한다. 사진가는 특정한 순간을 포착하여 진정한 인간적 삶의 의미를 밝혀준다. 재능과 창의성은 개인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의 통합적 성향이다.
자연․인간․사회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변화시키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사진의 목적이다. 사진의 진실은 곧 사진이 보여주는 세계의 진실이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식은 인간 자체에 대한 깊은 믿음과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 능력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휴머니즘 리얼리티의 저변에는 인간애가 깔려 있어야 한다. 사진을 ‘어떻게 찍는가’하는 생각보다는 ‘왜 찍어야’하는 생각을 앞세워야 한다. 리얼리즘 사진은 사진 속에 삶을 직접 끌어들임으로써 사진을 보다 인간화하는데 이바지한다. 사진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정신을 작품 속에 담는다.
사진가는 유독 낮은 곳에 앵글을 놓은 이유를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계속 걸었고, 언제나 카메라와 함께 있었다. 그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카메라로 사람들을 찍었다. 사람들은 가난했고, 나는 그들을 찍었다. 나는 없는 길을 간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없는 사람들을 찍은 것도 아니다. 나는 계속 권력자 앞으로 불려 갔다. 하지만 나는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또 길을 걸었다.”(75쪽) 마지막은 부산, 1965년작 ‘눈이 큰 계집애가 김을 뿜는 주전자를 앞에 두고 큰 스푼으로 무언가를 입에 넣는’ 컷이다(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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