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대빈창 2023. 7. 12. 07:00

 

책이름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지은이 : 올리버 색스

옮긴이 : 조석현

펴낸곳 : 알마

 

출판칼럼리스트 故 최성일(1967-2011)의 책을 통해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를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군립도서관에 10여권의 책이 쌓여 있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스테디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가장 먼저 빼들었다. 내가 잡은 책은 개정1판 106쇄로 2021년 10월에 출간되었다. 출판사 〈알마〉는 올리버 색스 타계 1주기를 맞아 산뜻한 개정판을 내었다. 신경학자의 글은 인간 뇌에 관한 현대의학의 이해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신을 추스르는데도 벅찬 현대인들에게 정신질환자들은 ‘정신 빠진 사람(?)’이었다.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불편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기는커녕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하지만 이들도 자신의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는 환자들이었다. 아주 작은 뇌에 입은 손상이 몸의 기능 이상을 유발했고,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책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경증환자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중증의 정신질환자까지 4부에 나뉘어 24편의 글을 실었다. 2016년 월드일러스트레이션어워즈에서 최고 영예상을 수상한 이정호의 그림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1부 ‘상실’은 뇌신경에 ‘결손’이 생긴 사람들의 이야기 9편을 담았다. ‘결손’은 모두 질병이나 부상 혹은 발달 장애로 인해 환자들이 특정 신경 혹은 정신 기능의 일부나 전부를 상실하는 것을 가리켰다. 첫글․표제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성악가․ 지방 음악교사 P선생은 뇌의 커다란 종양으로 시각 퇴행을 겪는 시각인식불능증 환자였다.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31쪽) 「길 잃은 뱃사람」의 49세 지미 G.는 코르사코프 증후군 즉 알코올로 일어난 유두체변성乳頭體變性으로 바로 몇 초 전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의 47세 크리스티너는 신경섬유 손상으로 모든 고유 감각을 잃어버렸다. 고유 감각(제육감第六感)을 잃으면 몸은 느낄 수 있는 실체이기를 멈추었다. 「침대에서 떨어진 남자」는 자기 왼다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믿어, 침대 밖으로 던지자 몸이 딸려 나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매들린의 손」의 나이 60세 매들린 J.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앞을 보지 못하고 경직과 무정위운동증無定位運動症으로 두 손을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날 아침, 그녀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작은 도너츠를 집어 들었다. 1년도 안되어 병원의 맹인조각가로서 지역 일대에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환각」의 찰스 D.는 자주 비틀거리고 쓰러졌다. 원인은 현기증이 아니라 사물의 위치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영 때문이었다.

「수평으로」의 맥그레거氏는 제육감의 위치 인식의 문제로, 몸이 중심에서 왼쪽으로 20도가 기울어졌다. 그는 좌우에 소형 수준기를 붙인 안경을 개발하여 몸을 반듯이 펴고 걸을 수 있었다. 「우향우!」의 60대 지적인 여성 S부인은 심한 중풍으로 대뇌우반구에 손상을 입은 편측무관심과 편측손실증상 환자였다. 접시에 담긴 음식의 오른쪽 절반 밖에 먹지 않았고, 립스틱도 입술의 오른쪽 반만 발랐다. 「대통령의 연설」은 언어상실증은 왼쪽 관자엽 장애로, 음색인식불능증은 오른쪽 관자엽의 장애로 발생했다.

2부 ‘과잉’은 신경 기능의 과잉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 5편이 담겼다. 「익살꾼 틱 레이」의 레이는 4세 때부터 몇 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극심한 틱 증상 때문에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신경학자는 24세 때 그를 처음 진찰했다. 기적 같은 ‘할돌’의 효과로 레이는 틱 증세가 부작용 없이 치료되었다. 「큐피드병」의 90세의 쾌활한 할머니 나타샤K.는 70년의 잠복기를 지나 신경매독 스피로헤타균이 대뇌피질을 자극했다. 페니실린 투여로 그녀는 생각과 충동에 얽매임 없이 적당한 탈억제 상태를 즐겼다.

「정체성의 문제」의 톰슨氏는 오인 혹은 의사擬似 식별로 단 5분 사이에 거의 열 명의 다른 사람과 착각했다. 그는 기억상실이라는 심연을 매번 뛰어 넘으려고 쉬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를 지껄였다. 「예, 신부님, 예, 간호사님」의 화학연구원이었던 B부인은 머리뼈절개수술결과 양쪽 이마엽의 안쪽에 커다란 암종이 있었다. 그녀의 세계는 감정도 의미도 사라지고 없었다. 「투렛 증후군에 사로잡힌 여자」의 60대로 보이는 백발 노부인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한 블록 거리의 짧은 거리를 지나가는 동안 40-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흉내 냈다. 하나의 흉내는 1,2분 정도였고, 전부 합해서 고작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3부 ‘이행’은 환청이나 환영을 보는 환자들의 이야기 6편을 실었다. 「회상」의 C부인은 양로원에 살던 어느날 밤부터 아일랜드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노래가 머리 속에서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관자엽 발작은 뇌 속의 회상을 담당하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간질이다. 「억누를 길 없는 향수」의 63세 노부인은 18세 때 뇌염후 진행성 파킨슨병으로 거의 지속적인 의식불명 상태로 24년간 병원에 입원했다. 엘도파 투여로 증상이 극적으로 해소되었다. 원시적 충동의 항진에 의한 수의운동의 흥분으로 젊은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그 시절로 돌아가려 했다. 「인도로 가는 길」의 바가완디 P.는 악성뇌종양으로 입원한 19세 인도 소녀였다. 관자엽 발작으로 꿈과 환상은 점점 더 빈번해졌고, 거의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그녀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내 안의 개」의 22세의 의대생 스티븐 R.은 약물중독으로 후각이 극도로 발달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냄새로, 심지어 사람의 감정까지도 구별할 수 있었다. 「살인」의 도널드는 PCP 복용 상태에서 애인을 죽였으나 자신의 행위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았다. 관자엽 발작이 일어났을 때 자주 관찰되는 폭력행위였다. 병원생활 5년째에 안정을 찾았고 주말 외출을 허락받았다. 자전거 사고로 2주 만에 반신불수에서 깨어났으나 재앙의 시작이었다. 놀랍게 기억력이 돌아온 그는 ‘살인’을 되풀이해서 보고, 수도 없이 계속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상태였다.

4부 ‘단순함의 세계’는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비범한 자질을 이야기하는 4편을 풀어냈다. 「시인 리베카」의 19세 숙녀 리베카의 행동은 어린아이 같았다. 행위상실증, 인식불능증, 감각 및 운동의 결손과 쇠약, 지적 도식․개념은 8세 수준이었지만 詩 속의 비유와 상징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살아 있는 사전」의 61세의 마틴 A.氏는 파킨슨병을 앓고 어렸을 때 수막염에 걸린 지적장애인이었다. 그는 1954년 출판된 전 9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그로브 음악, 음악가 사전』(6,000여 쪽)을 통째로 암기했다.

『쌍둥이 형제』의 26세 존과 마이클은 20자리 소수를 주고받는 놀이를 했다. 1966년 당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한 소수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의 언어청각인식불능증 21세 호세는 하루 종일 간질성 발작을 일으키는 지적장애자였다. 그는 주립병원에 오고 나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각 이야기마다 ‘뒷이야기’ 코너에서, 같은 증상의 다른 환자에 대한 경험을 덧붙였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신경학자의 인간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올리버 색스는 정신적으로 아픔을 겪는 이들을 환자가 아닌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그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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