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원근법 배우는 시간

대빈창 2023. 7. 10. 07:00

 

책이름 : 원근법 배우는 시간

지은이 : 송진권

펴낸곳 : 창비

 

다라이속 이불빨래를 발로 밟는 포대기아기 업은 젖먹이 엄마, 안개 자욱한 냇가에서 방방이질 치대며 빨래하는 어머니, 씨나락을 팔아 장날 육고기 한근 끊어와 아이 밴 며느리 먹인 할아버지, 가마솥 장작불로 손두부를 끓이는 아부지와 엄마, 품삯도 안 받고 남의 궂은 일 다해주던 아부지, 도회지에서 빚만 지고 시력까지 잃어 고향에 내려와 텃밭일구는 이, 오토바이 한 대에 네 식구를 달고 낚시 소풍 즐기던 장인어른, 저승길 동무하려고 사흘거리로 떠난 할머니들, 팔십 평생 이발로 한우물을 파신 미복이용원 할아버지, 첫 발령받고 와서 아이들을 강에서 놀게 해 꾸중 받고 눈물 흘린 어린 여선생, IMF로 몽땅 덜어먹고 정든 땅에 내려 온 이동식백화점. 정정한 늙은이와 풍 맞은 안주인, 프레스에 한 손 잃은 아들과 청상과부 큰딸이 함께하는 새마을떡방앗간, 중학 졸업하고 누나가 공장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들여 논 소, 물 댄 논에 비료를 뿌리는 아부지.

 

시편들에서 내 눈에 뜨인 정겹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 땅에서 농업·농촌·농민시를 찾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이 땅의 농촌에서의 삶은, 양극화의 극단을 자랑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밑바닥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했다. 실제 농촌에서 아기 울음소리 끊어진 것이 언제 적인지 기억에도 없다. 나는 그동안 농촌 공동체적 삶을 그리는데 탁월한 서정시인 박성우의 시집을 즐겨 잡았었다. 시인은 근래 시집보다 어린이 책에 힘을 쏟고 있었다.

『원근법 배우는 시간』은 시인 송진권의 세 번째 시집이다. 새삼 돌이켜보니 나는 시인의 시집 『자라는 돌』(창비, 2011),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걷는사람, 2018)를 전부 손에 넣었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57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정현의 「내 마음속 지리부도」였다. 시인은 충북 옥천 고향을 지키며 시를 쓰고 있었다. 옥천을 상징하는 인물은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1950)이다. 뒷표지 표사의 시인 김성규는 충북 옥천 출신으로 문학출판사 《걷는사람》의 발행인이었다.

시집은 고향 마을의 애틋한 풍경과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어린 시인이 경험한 시원(始原)의 시간들이 불려나왔다. 마지막은 「새마을떡방앗간」(78쪽)의 전문이다.

 

늙어 꼬부라는 졌지만 아직도 정정한 늙은이와 / 풍 맞아 한쪽이 어줍은 안주인과 / 대처 공장에 나갔다가 / 한쪽 손을 프레스기에 바치고 돌아온 아들과 / 젊어 혼자 된 환갑 가까운 큰딸이 / 붉은 페인트로 새마을이라 써놓은 / 무럭무럭 훈김이 나는 미닫이문 안에서 /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 뽀얀 절편을 뽑아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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