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공정하다는 착각

대빈창 2023. 7. 5. 07:00

 

책이름 : 공정하다는 착각

지은이 : 마이클 샌델

옮긴이 : 함규진

펴낸곳 : 와이즈베리

 

섬을 떠나면서 후배가 물려 준 10권에서 여섯 번째 잡은 책이었다. 가장 눈에 익숙한 표제였다. 군립도서관 대여목록 상위에 자리 잡은 책이었다. 2010년 5월에 출간되어 200만부 이상이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 출간된 저자의 책 중에서,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가장 늦게 선 뵌 책이 후배의 책 건넴으로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책의 부제는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였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1958년 영국의 사회학자․사회운동가 마이클 영이 가장 먼저 사용했다. 2034년 시점으로 저술한 풍자소설 『능력주의The rise of Meritocracy)에서 쓴 용어다. 그는 말했다. “능력을 지나치게 따지는 사회에서는 많은 재능을 무가치하게 평가하기가 쉽다. 하층계급이 이처럼 도덕적으로 취약해 진 적은 없다.”(313쪽)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el J. Sandal, 1953- )은 개인의 능력을 우선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는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돼 있다”고 역설했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능력을 우선하고 공정公正을 추구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실질소득 기준 노동가능 연령인구의 중위소득은 약 3만6,000달러인데, 그것은 40년 전 보다 낮은 수준이다. 오늘날 가장 부유한 1%의 미국인이 하위 50%가 버는 것보다 많이 벌고 있다. 능력주의는 전혀 공정하지 않으며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주는 가혹한 현실이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다. 패자들의 분노는 엘리트에 대한 포퓰리스트적 반항의 핵심에 자리 잡았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에 대해 샌델은 말했다. “수십 년 동안 불평등이 심화되고 문화적 갈등도 거세진 끝에 성난 포퓰리스트들의 반란이 일어난 결과”라고. 트럼프의 대선 전략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의 모욕감과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었다.

글로벌 능력주의적, 시장 주도적 시대는 승자에게 아첨을, 패자에게 모욕을 던져 주었다. 노동계급의 생산자로서의 지위 상실은 세계화 시대의 능력주의적 인재 선별과 시장주도적 효과와 맞물렸다. 노동계급의 포퓰리스트적 분노는 유럽의 초극우민족주의, 반이민 정당들의 가공할 진군 현상으로 드러났다. 미국, 영국, 유럽에서 포퓰리즘의 발흥은 집권 엘리트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피해는 진보 및 중도좌파 정당들이 입었다.

능력주의 오만의 가장 고약한 측면은 학력주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학학력의 무기화는 능력주의가 얼마나 큰 폭정을 저지르는가를 보여주었다. 2019년 3월 미국에서 대형 입시 스캔들이 터졌다. 33명의 부유한 학부모가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위해 입시부정을 저질렀다. 입시상담가 윌리엄 싱어는 SAT(대학 자격시험)을 조작했다. 체육특기생으로 아이비리그에 ‘옆문’으로 들어가게 했다.

재능은 애초에 행운의 결과였다. 재능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에 태어나고 산다는 것도 우연이다. 샌델은 두 가지 예를 들었다. NBA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만약 프레스코 화가가 인기 있던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리고 능력주의의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우는 ‘노력’도 일부분만 진실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23개를 딴 마이크 팰프스처럼 연습한다고 누구나 그처럼 메달을 휩쓸 수 없다.

세계화 시대는 노동계급에게 임금을 정체시켰고, 감당할 수 없는 불평등을 확대했다. 1970년대말 주요 미국기업 CEO는 일반 노동자보다 30배 정도 많은 보수를 받았다. 2014년 그것은 300배로 늘어났다. 노동계급의 굴욕과 절망은 2014년에서 2017년 사이 10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3년 연속 내림세로 나타났다. ‘절망끝의 죽음Deaths of Despair'은 자살, 약물 복용, 알코올성 간질환자의 만연에 따른 것이었다.

샌델의 대안은 ‘일의 존엄성’의 회복이었다. 어네어 터너, 워렌 버핏을 비롯한 금융업계 투자자들은 실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투기를 일삼는 거액의 불로소득자에 불과했다. 그는 말했다.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야 한다”고. 우리 시대의 능력주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으며, 불평등을 정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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