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인간 부흥의 공예
지은이 : 이데카와 나오키
옮긴이 : 정희균
펴낸곳 : 학고재
내방 책장 한 칸은 〈학고재 신서〉 시리즈가 차지하고 있다. 20여 년 전 그 시절, 《학고재》는 첫 손에 꼽는, 믿고 찾는 출판사였다. 신서 1- 35까지, 실용서 세 권을 제외한 미술관련 서적이 어깨를 대고 가지런하다. 그리고 신서39 『중국 청동기의 신비』다. 나의 블로그 ‘daebinchang'은 2007. 4.에 첫 책 리뷰를 포스팅했다. 두 번째 글이 『중국 청동기의 신비』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대부분 흰 표지였던 시리즈는 누렇게 바랬다. 책은 다시 나의 손을 탔고, 이제 신서 22 『민족혼으로 살다』, 신서 23 『동양미의 탐구』 두 권만 남았다.
내가 잡은 책은 2002. 7.에 출간된 초판1쇄였다. 일본 공예연구가 이데카와 나오키(出川直樹, 1941- )의 『인간 부흥의 공예』는 〈학고재 신서 35〉로 부제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를 넘어서- 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관련 서적으로 ‘학고재 신서’ 7․8․9 『조선을 생각한다』, 『조선의 소반․조선도자명고』, 『조선미의 탐구자들』을 읽었다. 책은 「한국어판에 부쳐」에서 밝혔듯이 인간성을 무시하고, 현실 사회에 일정한 기능을 할 수 없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사상과 민예론을 전면 부정했다. 고대로부터 민중이나 민족에 뿌리내려 이어져 온 공예와 건축의 미를 잇는 고민예古民藝의 미를 기반으로 하는 ‘민예양식(민족양식)’을 제창했다. 그리고 인간성에 입각한 공예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했다.
이데카와 나오키는 이렇게 호소했다. “모든 것을 공장에 맡겨 그로부터 제조된 물건으로 생활을 때우고, 기기 스위치를 누르는 것만으로 일생을 보내서는 안 된다. 현대인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만들고 생각하고 꾸미고, 그리고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민예民藝는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민중의 무명잡기無名雜器에 지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이 생겨나는 조건을 살펴 기존 가치관에 대변환을 가져온 공예이론’(12쪽)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1926년 9월에 지방신문 〈에치고越後 타임스〉에 실린 「게테노미(下物, 무명잡기)의 미」라는 글이 민예운동의 첫 출발이었다. 저자는 ‘야나기이즘’을 공예를 터무니없이 과대시하고 사회나 인간이 공예를 위해 존재하는 듯 한 특이한 인식으로 보았다. 자신의 의식을 민중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민중의 이상으로 동일시했다. 자신이 바라는 지고한 아름다움(민예미)이 그대로 민중이 바라는 아름다움으로 치환된 것이다.
야나기의 민예론은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그저 무의식으로 손을 움직이는, 어렴풋한 그림자 같은 존재로, 감정과 개성이 없는 얼굴이었다. 열악한 상황,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풍요로우므로, 그 생활을 경애한다는 그의 시선은 인간을 피가 흐르는 존재가 아닌 아름다움을 낳은 풍요로 간주할 뿐이다.
나의 눈길은 여기서 한참 머물렀다. 공예연구가의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야나기의 민예론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추초문秋草紋 항아리’는 조선도자 연구가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 1884-1964)가 1916년에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선물한 항아리다. 그러기에 높이 13㎝에 지나지 않는 작은 항아리는 민예관 수장품에서 특별한 의의를 지녔다. 항아리의 문양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 광주廣州의 금사리金沙里 관요에서 많이 보이는 대표적인 청화 문양이다. 이 항아리(壺)는 원래 금사리 관요시대(18세기 전반)의 〈청화백자난초문표형병靑畵白瓷蘭草紋瓢形甁〉의 반으로 자른 그 아래 부분이다. 항아리 맨 위의 입(주둥이) 부분과 표주박 모양의 허리 부분이었다. 뚜껑을 얹은 부분에 유약이 없는 것은 입 윗면은 원래의 형태에서 그 상반부가 떨어져나가 갈아 댄 흔적이다. 이 도자기가 원래 항아리였다면 입의 윗면에도, 항아리 안쪽에도 유약이 씌어져 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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