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유럽 도시 기행 1

대빈창 2023. 7. 18. 07:00

 

책이름 : 유럽도시기행 1

지은이 : 유시민

펴낸곳 : 생각의길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柳時民, 1959- )의 책을 생각보다 많이 잡지 못했다. 얼핏 떠오르는 것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세 권뿐이었다. 책은 유럽 도시 기행 시리즈의 첫째 권이다. 앞으로 나올 시리즈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도시 넷을 한 권으로 묶을 예정이다. 저자는 아내와 함께, 한 도시에 4박5일정도 머물렀다.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다녀온 뒤 네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부부의 발걸음은 건축물과 거리, 광장, 박물관과 미술관에 머물면서 유럽 도시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담아냈다. 네 도시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룩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성취는 유럽문명을 넘어 인류사를 바꾸었다. 저자는 각각의 도시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history)과 그 도시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사람의 생애(story)를 엮었다. 나의 짧은 리뷰는 사람에 방점을 찍었다.

스코틀랜드 귀족 엘긴(Elgin, 1811-1863)은 19세기초 이스탄불 주재 영국대사로 파르테논의 대리석을 뜯어냈고, 그리스의 고대미술품을 대량 수집했다. 영국왕실은 엘긴의 약탈품을 사들였다.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 1925-1994)는 세계적인 배우로 민주화운동의 전사였고,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엘긴의 대리석’을 되찾으려 분투했다. 아테네로 망명한 소아시아 도시국가 밀레토스의 난민소녀 아스파시아(Aspasia, BC 5세기)는 이혼남 페리클레스의 연인으로, 15년 동안 아테네의 ‘퍼스트레이디’였다. 1천500년 망각의 세월의 건너뛰어 국민국가 그리스의 수도로 부활한 아테네는 기운이 떨어지고 색이 바랬지만, 내면의 기품을 지닌 도시였다. 남부러울 것 없었던 어제의 미소년이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은 주름진 얼굴의 철학자 모습이었다.

서구 문명은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빅뱅’을 일으켰고, 로마 제국에서 ‘가속 팽창’을 했다. 로마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명의 발전 양상을 압축해서 드러냈다. 로마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87)다. B.C 1세기 중반 잠깐 최고 권력으로 등극했을 뿐 황제가 되지 못했다. 로마의 정치체제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이름은 강대한 국가의 절대 권력자(캐사르, 카이저, 시저, 차르 등)를 지칭하는 보통명사였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주역은 주세페 가리발디(Giuseppe Garibaldi, 1809-1882)였다. 그는 혜성처럼 나타나 전사 1천명으로 수십 배 규모의 시칠리아 군대를 무찔렀다. 나폴리를 점령하고 로마 방면으로 진군해 교황청의 용병부대를 제압했다. 1862년 4만 군사로 오스트리아 군대를 제압해 베네치아를 탈환했다. 조르다노 부르노(Geordano Bruno, 1548-1600)는 가톨릭 사제로 전통 신학을 의심한다는 혐의 때문에 이십대에 도망자가 되었다. 교황청 종교재판소로 이송되어 7년동안 재판을 받았다. 자신의 철학과 과학 이론을 통째로 부정하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부하여 피오리 광장에서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불에 타 죽었다.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를 닮았다. 누구 앞에서도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돈지갑이 얄팍해도 기죽지 않았다.

역사가 무려 2천700년이 된 이스탄불의 최초 이름은 비잔티움, 4세기부터 15세기까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 콘스탄티노폴리스, 그 다음 500년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보통 네 여자와 정식 혼인하고, 다른 여인을 비공식적으로 더 거느렸다. 술래이만 1세는 한 여자하고만 결혼하고 황후의 지위를 주었다. 본명이 알렉산드라 아나스타시아 리소프스카는 열여덟살에 전쟁포로로 이스탄불에 잡혀와 노예로 살다가 하렘에 들어온 폴란드 여인 록셀라나(Roxelana, 1502년경 ~1558년)였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무스타파 케말 1881-1938)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 정치와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16년을 재임하면서 터키를 이슬람국가에서 확실하게 세속국가로 만들었다.

파리 면적은 서울의 1/6 정도이고, 인구는 2019년 기준 214만 명이다. 센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면서 파리 도심을 우안과 좌안으로 나눈다. 년중 100일 넘게 비가 내린다. 19세기초 노트르담은 폐허를 방불케 해 흉물로 처거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일었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존폐의 기로에 선 노트르담을 구했다. 시민들은 노트르담 복원기금 조성캠페인을 벌여 성당을 완전하게 복원했다. 나폴레옹 3세가 기용한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Georges-Eugène Haussmann,1809-1891)은 파리, 마르세유, 리옹 등 프랑스의 대도시들은 혁명적으로 개조했다. 드골 광장을 중심으로 12개의 대로가 방사선으로 퍼져나간 오늘날 파리 구조를 만들었다. 600㎞의 수로와 340㎞의 하수도, 빗물 저장시설과 식수공급에 필요한 상수원을 구축했다. 대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세계박람회의 관문으로 세운 324m 높이의, 1889년에 완공된 철골구조물은 디자인을 한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의 이름을 붙였다. 에펠탑은 금속 7천300톤을 포함해 전체 무게가 1만톤이 넘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세상의 기원〉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는 나폴레옹 3세를 공개 비난한 공화주의자였다. 튈르리 성당 북쪽 방돔 광장의 나폴레옹 동상을 때려 부순 죄로 작품과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스위스로 쫓겨난 이후 다시는 파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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