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지은이 : 에릭 두르슈미트
옮긴이 : 강미경
펴낸곳 : 세종서적
군사사軍事史 전문가 제러미 블랙(Jeremy Black)의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를 책씻이하고, 20년 묵은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역사의 굴곡은 언제나 리더의 아집과 무책임에서 시작된다!’는 카피를 단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는 초판이 2001. 3.이었다. 베테랑 종군기자 에릭 두르슈미트(Erick Durschmied, 1930- )는 베트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아일랜드 내전, 중동 전쟁, 쿠바 미사일 위기, 칠레 피노체트 쿠데타, 아프가니스탄 분쟁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전쟁을 취재했다. 이 책까지 세 권의 책이 번역되었다. 날씨가 승패에 미쳐 역사까지 바꿔 놓은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그린 『날씨가 바꾼 전쟁의 역사』(이다미디어, 2006), 칭기즈 칸의 유라시아 정복전쟁에서 21세기 중화인민공화국의 우주 공정까지 다룬 『용의 유전자』(세종서적, 2010).
프랑스의 〈르몽드〉는 평했다. “생존해 있는 그 어떤 장군보다 더 많은 전쟁을 겪고 생존한 사람”이라고. 저자는 역사 기록, 일기, 편지, 고고학 자료 등과 백 명 이상을 인터뷰해 역사의 향방에 영향을 미친 10개의 전쟁을 생생한 다큐멘터리처럼 재현했다. 프로이센의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는 군사문제에 정치적 방향성 이론을 제시한 <전쟁론>에서 “전쟁에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지도자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에릭 두르슈미트는 전쟁 승패의 결정적 요소로 지도자의 자질과 전환요소(hinge factor)를 꼽았다. 군사용어 ‘전환요소’는 날씨의 변덕, 예기치 않은 영웅적 행위 등 예측불가능하면서도 승패의 방향을 결정하는 현상을 가리켰다.
① 「하틴의 뿔」 전투(1187년, 십자군 전쟁) - 원칙에 대한 무관심. 술탄 살라딘은 하틴 전투이후 파죽지세로 예루살렘 왕국의 나머지 영토를 점령했다. 1187. 10. 2. 프랑크족의 88년 동안의 예루살렘의 통치가 끝났다. 기독교인들의 유혈이 낭자한 도시 점령과는 대조적으로 이슬람교도의 재탈환은 교양 있고 예의바른 행동으로 후세에 회자되었다.
②아쟁쿠르 전투(1415년, 백년 전쟁) - 승리에 대한 집착. 전투의 전환요소는 날씨와 비로 질퍽하게 젖은 들판이었다. 프랑스의 최정예 중세 기사들이 사회적 신분이 낮은 영국 헨리5세의 보병들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들은 명예와 용기를 앞세우는 낡은 관습과 영국의 강력한 무기 장궁에 다시 당하는 우를 범했다.
③카란세베스 전투(1788년,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 - 콤플렉스와 자신감 부재. 오스트리아 요셉2세 군대는 공포에 짓눌려 스스로 자멸한 어이없는 패전이었다. 오스트리아군이 밤중에 퇴각하면서 저지른 온갖 살인과 강간 행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④워털루 전쟁(1815년, 나폴레옹 전쟁) - 열정과 책임감의 상실. 워털루 전쟁은 나폴레옹과 관련된 전쟁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전쟁이었다. 은퇴하여 퇴물이 된 그루시 장군은 우측 부대와 예비병력 지휘권을 쥐었으나 의욕이 없었다. 당시 그루시는 프로이센의 주력 부대가 자기 부대 앞을 곧바로 가로질러 몽생장을 향하는데도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⑤발라클라바 전투(1854년, 크림 전쟁) -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부재. 전투의 전환요소는 어리석음과 완고한 고집 때문이었다. 잘못 쓴 명령문과 성질급한 한 장교의 무책임한 말이 화약의 불을 당겼다. 전쟁 지휘부 다섯 사람의 의사소통 부재는 경기병 대대를 죽음의 계곡으로 질주시켰다.
⑥쾨니히그래츠 전투(1866년, 보불 전쟁) - 실패에 대한 감정적 대응. 전투의 전환요소는 두 명의 오스트리아 백작이 군령을 어긴 행위와 결정적 순간에 군대를 움직인 프로이센 왕자의 판단이었다. 600년 동안 세력을 떨쳐왔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후 다시는 세계사를 주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⑦스피온 콥 전투(1900년, 보어전쟁) - 기술발전에 대한 무지. 영국군 식민지 정예군이 보어인 농민 부대에 깨진 전투였다. 영국군 관측병이 발견할 수없는 보어인들의 연기 없는 화약은 새로운 포병 전술을 요구했다. 영국군은 그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⑧타넨베르크 전투(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사적 감정에 대한 집착. 러시아 주력부대 제1군과 제2군 사령관은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1904-1905년 러일전쟁 당시 사단장이었던 둘은 그 이후 서로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으로 격앙된 사이였다. 전쟁의 전략을 무시하고, 라이벌은 먼저 영광을 차지하기 위한 사적 명예에 몰두했다.
⑨ 탕가 전투(1914년, 제국주의전쟁)는 정보에 대한 긴장감의 결여가 전투를 망쳤다. 아프리카 쟁탈을 둘러 싸고 발발했던 제1차 세계대전 최초의 전투였다. 영국인들은 대영제국의 원정군이 한 줌도 안 되는 검둥이 용병들에게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전투의 전화요소는 성난 벌떼였다.
⑩아라스 전투(1940년, 제2차 세계대전) - 시대 흐름에 대한 무관심. 독일군 롬멜과 구데리안은 전쟁에 관한 한 한 시대의 흐름을 먼저 읽은 선구자였다. 그들의 기동전을 이해할 수 없었던 히틀러는 탱크 병단에 사흘 동안 진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때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던 영국 원정군 30만 명은 무사히 탈출하여 훗날을 기약할 수 있었다.
전쟁사 전문가 에릭 두르슈미트는 말했다. “지휘관은 뛰어난 자질이 있다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심각한 단점이 있다면 상식과 보편 원칙에 따라 적절히 제어할 의무를 가질 뿐이다. 그렇게 하고도 정말 하늘의 버림을 받아 패했다면 우리는 그를 무능력자라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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