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대빈창 2023. 7. 28. 07:00

 

책이름 :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지은이 : 올리버 색스

옮긴이 : 양병찬

펴낸곳 : 알마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Olver Sacks, 1933-2015)의 책을 두 권 째 잡았다. ‘현대 의학의 계관시인’, ‘과학 저술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고인故人을 뒤늦게라도 만난 것이 다행이었다. 나의 독서 이력에서 몇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행운이었다. 군립도서관 두 곳에 여덟 권의 책이 비치되었다. 출간 순서에 관계없이 모든 책을 섭렵해야겠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Everything in Its Place』는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책이었다.

저자가 평생 사랑하고 추구했던 가치들이 우아하고 사려 깊은 문장의 감동적인 이야기 33편이 실렸다. 1부 ‘첫사랑’은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 6편이었다. 금단증상을 느낄 정도로 중독된 수영. 삶의 원형原型을 정해 준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자연사, 지질, 과학, 빅토리아앨버트). 무척추동물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두족류(오징어, 갑오징어, 문어). 1806년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영국 최고의 강연자 및 실용 화학자’로 입지를 굳힌 ‘화학의 시인’ 험프리 데이비(1778-1829). 어린 시절의 서재는 초기 기억 중 상당 부분을 차지. 헝가리의 시인 프리제시 카린시는 당대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헤르베르트 올리베크로나의 뇌종양 수술을 예닐곱 시간 넘게 집도 받으면서 느낌을 서술.

2부 ‘병실에서’는 의대생 시절부터 신경과 전문으로 만났던 수많은 환자들의 임상 실험에 대한 이야기 15편이었다. 갑상샘저하증으로 7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던 혼미stuper 상태의 엉클 토비. 질병의 경과 및 예후를 간혹 예고하는 예지몽premonitory․전지몽precursory dream. 신체 소유는 신경활동. 유체이탈체험(OBEs)과 임사체험(NDEs)을 경험하는 환자들은 ‘환각’이라는 용어를 거부하고 ‘현실성’을 강력히 주장. 특이행동(딱꾹질, 발작, 식은땀, 치아 맞부딪히기·······)의 공통점은 지속적일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강렬해지는 전염성. 투렛증후군 환자 보도사진가 로웰 핸들러와 동행하며 전 세계의 투렛증후군 환자들의 기이한 신경학적 질환에 적응하는 모습을 기록. 자전적 모놀로그를 고안해 이름을 날렸던 배우․작가 스플링은 자신의 자살이 고귀한 드라마가 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약물 남용으로 인한 과대증상과 탈억제 증상을 보인 일흔 두살 노인의 5년 후 정상 활동(치매의 비가역성). B12 주사를 맞고 건강을 찾은 악성빈혈의 90대 중반 노인.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가상적 정체성. 뇌의 노화와 질병에도 평생학습 가능. 크로이츠벨트-야콥병Creutzfeldt-Jakob(CJD)은 100만 명 중 한 명이 걸릴 정도의 희귀질환(1968년에 전염성 질환으로 밝혀짐),뉴기니의 포레Fore족의 ‘쿠루Kuru'는 죽은 자의 뇌조직을 먹는 식인풍습cannibakism'이 매개체. 조울증(양극성 장애) 환자는 엄청난 쾌락이나 황홀감을 안겨 줄 수 있어 그 강렬함은 포기하기 어렵다. 주립병원은 정신병 환자의 가장 완벽했던 안식처Safe haven.

3부 ‘삶은 계속된다’는 우주에 대한 동경, 자연계의 생명체에 대한 애정, 삶을 되돌아보는 글 12편이었다. 어린 시절 가장 먼저 읽은 책은 허버트 조지 웰스가 1901년 발표한 외계생명체에 대한 우화 『달에 간 사나이』. 위대한 전통의 맥을 잇는 러스앤드도터스(식료품점)가 주관하는 청어 축제. 1960년 모터바이크로 미대륙 횡단여행 때 들른 콜로라도스프링스의 화려한 변신. 미국양치식물협회(AFS)의 뉴욕 파크 애비뉴 구름다리 틈새에 자라는 양치식물 관찰. 주기율표 112-118번의 ‘더블 매직’ 동위 원소. 서둘러 움직이는 코끼리는 뜀뛰기와 걷기를 병행. 토론토 동물원 오랑우탄과 대면에서 동류의식. 신경장애 환자에게 회복력과 치유력을 발휘하는 자연과 정원. 속씨식물과 완전히 다른 진화 경로를 밟아 온 은행나무. 유대교도 가정에서 안식일에 먹는 음식 게필테 피시gefilte fish. 소셜미디어 시대에 성장하여 디지털생활 중독에 면역성이 없는 사람들은 엄청난 규모의 신경학적 재앙.

자칭 활자중독자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3부의 ‘깨알 같은 글씨 찾기’에 나오는 독서에 관한 신경학적 진단이었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아마도 5000년 전)에 진화했으면, 뇌의 시각피질 중 미세한 부분에 의존한다. 우리가 오늘날 시각단어형태영역(VWFA)이라고 부르는 이 부분은 좌뇌左腦의 뒤쪽 근처에 있는 피질영역의 일부다. 이것은 자연계의 기본 형태를 인식하기 위해 진화했지만, 문자나 단어의 인식을 위해 전용될 수 있다.’(315쪽)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근 살짝  (0) 2023.08.02
빈곤 과정  (0) 2023.07.31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0) 2023.07.27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0) 2023.07.26
이희수 교수의 세계문화기행  (0) 2023.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