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은근 살짝
지은이 : 유용주
펴낸곳 : 시와시학사
시집 - 가장 가벼운 짐(창작과비평, 1993) / 크나큰 침묵(솔, 1996) / 내가 가장 젊었을 때(시와반시사, 2021)
산문집 - 그러나 살아가리라(솔, 2000) / 쏘주 한잔 합시다(큰나, 2005) /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작은것이아름답다, 2013) /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걷는사람, 2018)
지금까지 내가 잡은 시인 유용주(劉容珠, 1959- )의 책들이다. 신간 산문집 『우리는 그렇게 달을 보며 절을 올렸다』(교유서가, 2022)를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해가 바뀌었고, 책이 비치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3주 만의 강화도 나들이에 도서관부터 들렀다.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들을 검색하자, 한 권이 다른 이의 손을 먼저 탔다. 다음 출타를 기약하며 대신 시인의 묵은 시집을 빌려왔다.
대부분의 시집이 세로로 길쭉한데, 2006. 1.에 초판이 나온 시집은 책판형이 158*191mm로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3부에 나뉘어 44편이 실렸다. 시인 유용주의 옆에 있는 사람은 항상 소설가 한창훈이었다. 발문 「사람아, 지평선을 향하여 걷는 사람아」에 의하면 시인과 소설가의 첫 만남은 1993년 충남 서산에서였다. 서른하나의 소설가와 서른다섯의 시인은 초장부터 술집으로 직행했다. 알고 있는 독자는 알고 있다. 시인이 밑바닥 삶 속에서 벌인 처절한 생활고와의 사투를. 소설가는 말했다. “그 먼 거친 길을 걸어 여기에 왔구나. 쓸쓸하고 서럽고 애처로웠던 것들. 차고 넘쳐서 더 아렸던 그것들 풀어내느라 애썼구나.”(130쪽)
2․3부 시편에 등장인물들이 눈에 익었다. 「건널목」의 시인 윤중호. 「어여쁜 얼굴」의 시인 박형준. 「위대한 표어」의 소설가 김종광. 「성탄제」의 김치규 교수. 「중견中犬」의 문학평론가 김현, 시인 김남주, 고정희, 기형도, 이연주, 진이정, 윤중호, 김강태, 임영조, 소설가 김소진, 명천 선생. 「황사」의 시인 김영태, 「갓 끈」의 시인 김춘수. 「동매冬梅」의 시인 박남준. 표제시는 시인 김지하가 한 방송에서 인생이란 소리 소문 없이 살다가는 것이 최고라고, ‘은근 슬쩍’은 전라도 방언으로 ‘은근 살짝’ 이라고. 마지막은 「입동立冬」(13쪽)의 전문이다.
아무리 허리띠가 양식이라고 하지만 새벽별 눈꺼풀에서 떼어내고 쌀을 퍼담으면서 서럽기도 서러웠을 겁니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 장리 빚은 늘어가고 쌀독은 어느새 바닥이 보이고 // 나 그때 어머니 나이 되어 새벽밥 지으면서 그 옛날 잠결에 듣던 어머니 쌀 푸는 소리, 항아리 밑을 긁는 바가지 소리, 서늘한 바람 몰아세운 뒤 문 이내 닫히고 문풍지 미세하게 떨리는 소리, 조금 있다가 타닥타닥 삭정이 튀면서 밥 퍼지는 냄새를 가물거리며 맡은 적 있습니다 배가 든든해야 덜 추운 법이라고······ 도시락 보자기 건네주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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