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는 그렇게 달을 보며 절을 올렸다

대빈창 2023. 8. 4. 07:00

 

책이름 : 우리는 그렇게 달을 보며 절을 올렸다

지은이 : 유용주

펴낸곳 : 교유서가

 

시인의 인생은 14세에 학교를 중도하차하고 중국집 보이로 팔려갔다. 식당, 제빵 공장, 유리공장, 사탕공장, 보석가게, 공사장 노가다, 술집, 남한산성(군대 영장), 우유보급소 등 온갖 인생 밑바닥을 낮은 포복으로 기었다. 나에게 시인의 첫 책은 산문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 2000)였다. 그리고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첫 산문집이 밑바닥 삶과의 정직한 사투를 그렸다면 『우리는 그렇게 달을 보며 절을 올렸다』는 고향에 돌아와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고, 정직한 분노로 세상을 마주했다.

시인은 집중된 삶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피해 옛집을 찾아왔다. 전북 장수의 금강과 섬진강이 나뉘는 수분령水分嶺 하늘 아래 첫 집, 고개 위 끝 집의 옛 집터에 허름한 집필실을 마련했다. 시인 박두규는 표사에서 “자신의 삶에 가식과 위선이라는 때를 묻히지 못하는 시인의 솔직한 감정이 문학의 결이 되었다”고 말했다. 산문집은 4부에 나뉘어 30편의 글이 실렸다.

1부 ‘아름답게 사라지는 방법’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죄의식의 기록이다. 세월호 3주기의 4․16 도보순례에 대한 비판적 성찰. 친일과 독재자 찬양으로 얼룩진 질마재미당시문학관의 수치, 문단의 치부 성폭력 사태(원로시인 고은 등). 시인을 상해죄로 고소한 팔십줄 노인네의 알량한 마을 이장 욕심. 대부분 70․80대로 월급 180만원을 받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은 사실상 종신제로 극한의 노욕.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21세기 지구(한국은 플라스틱 소비 세계1위 국가).

2부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시력 30년 시인은 거침없이 문단의 치부를 폭로했다. 서정주의 전두환 축시 「처음으로」(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조병화의 전두환 찬양시 「청렴․온순溫厚․참신한 새 출발出發······ 국운國運이여 영원 永遠하여라······ 새 대통령 당선을 경축하며」, 김춘수(박정희 정권때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평생을 호의호식) 전두환 퇴임기념 환송시 「님이시여 겨레의 빛이 되고 역사의 소금이 되소서」. ‘인간의 욕망은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억제해야 아름답다. 자기검열에서 느슨하면 추해진다. 지저분해진다. 노욕이 추한 거보다 훨씬 보기 안 좋다.’(120쪽)

3부 ‘섬으로 부치는 편지’는 지금의 시인을 만든 추억들을 담았다. 전북 장수의 상징 인물은 소설가 박상륭. 절친 거문도 소설가 한창훈에게 띄운 애틋한 편지. 어린 시인이 일했던 대전 중앙시장 골목의 시인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표지판이 붙은 가게들. 정동제일교회 배움의 집 3기(238명) 동문에서 가장 친한 만덕이. 차량 접촉사고로 돈을 뜯어내려는 깡패들과의 싸움. 새벽 농로 산책에서 만나는 사람들. 표제글 「우리는 그렇게 달을 보며 절을 올렸다」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럴 것이었다. 인생이란 게 적은 빗물에도 골이 패고 버석거리는 마사토처럼, 아무리 밑거름 두둑이 넣고 잡풀 뽑아 비료만큼이나 땀 흘려 하루해를 업어 키운다 하더라도, 억세기가······’(172쪽). 열네 살 나이에 중국집 보이로 팔려 간 이래 솥뚜껑운전수 경력 40년. 가난한 자들의 희망 소주 예찬. 깨복쟁이 친구 준이의 풍찬노숙風餐露宿.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던 품앗이 손모를 내던 시절을 버티게 해준 노동요. 아우슈비츠 생존자를 다룬 영화 파블로 솔라르스 감독의 2017년작 〈나의 마지막 수트〉. 시인의 걷기(장수- 방화댐 윗길 왕복 12㎞, 서산-간척지A지구)에서 만나는 사람들.

4부. ‘내 인생의 음악’은 시인의 시평을 모았다. 서산․태안말로 이루어진 세 권짜리 두툼한 사전을 펴낸 시인 김병섭. 시인의 영혼을 뒤흔든 시들.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 킹 크림슨의 〈에피타프〉. 반거충이 농부로 술에 쩐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무능력한 지식인 아부지. 작가 김성동의 27년 만에 완간된 『국수國手』(솔, 2018)의 사랑 이야기. 시인 박형진의 『내 왼쪽 가슴속의 밭』(천년의시작, 2022)의 해설 「어머니 마음, 농사짓는 마음」.

고향의 옛터에 오두막을 짓고 들어앉은, 수분령 아래 높고 외딴 집의 시인은 선배의 말을 가슴에 품었다. “청빈은 거지처럼 사는 거나 산 속에서 가난하게 사는 삶이 아니라 능히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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