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빈곤 과정

대빈창 2023. 7. 31. 07:00

 

책이름 : 빈곤 과정

지은이 : 조문영

펴낸곳 : 글항아리

 

요즘 나의 독서에서 의도치 않았지만 빈곤貧困에 관한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초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쫓겨난 평범한 서민들의 삶을 되살려 낸 반빈곤 활동가 김윤영의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얼마 전 책씻이했다. 판자촌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의 역사를 추적한 김수현의 『가난이 사는 집』을 대여도서 목록에 올렸다. 『빈곤 과정POVERTY AS PROCESS』는 인류학자가 지난 20여 년간 한국과 중국의 전형적 빈민지대(달동네, 공장지대, 슬럼가)를 현장․연구하여 빈곤 과정을 기록했다.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이라는 부제를 단 책은 3부 9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은 유럽․한국의 사회보장 역사와 서울 난곡 지역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효과를 살폈다. 북유럽의 사회보장은 조세 부담을 높여 전 인구를 수혜자로 삼았고, 한국의 자산기반 복지는 저축과 소득공제를 실질적 복지 수단으로 삼아 수혜집단이 중산층․고소득층에 집중되었다. 계급정당․사회적 연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한국인들은 가족중심의 생존 전략으로 남의 가난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2장은 중국 둥베이 지방 노동자의 의존과 한국 빈민운동의 역사를 다루었다. ‘자립’을 숭배하고 ‘복지 의존welfare dependency'를 경멸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갈시하고, 이들의 사회 안전망을 최소화하는 정치 전략이었다. 부랑인․소매치기․성매매 여성을 사회문제로 보았으며 습속 탓으로 돌렸고 대대적인 지도와 통제로 일관했다. 시설(한국), 수용소(중국)에 감금하고 의식 개조와 노력 강제, 국토 개척 임무라는 폭력으로 내몰았다.

3장은 중국 선전 폭스콘 공장지대 여성 노동자의 6년에 걸친 노동 궤적을 그렸다. 자료 수집을 허락해준 쮀메이의 2013. 1.부터 2019. 5.까지 여러 노동이 교차하는 사회적 공장 풍경을 담았다. ‘사회적 공장’은 노동자들을 단순히 기계, 노예, 짐승으로 억압하는 대신 이들의 열망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가치를 수탈했다. 4장은 중국 하얼빈의 폐품수집 농민공의 고된 분투를 그렸다. 40대 중반의 여성 쑨위펀이 토지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과 자신을 부단히 검열하는 상황을 고찰했다. ‘물어 볼 엄두가 안 나고, 아무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은 태생적인 게 아니라, 묻고 따지고 소리지를 자격을 박탈당하는 경험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누적된 결과’(186쪽)다.

5장은 글로벌 빈곤 레짐의 통치성 분석이었다. 서구의 개발원조 프로젝트는 인적․물적 자원을 결집해내는 거대한 빈곤산업으로 성장했다. 마르크스주의와 종속이론 진영의 개발원조가 기존 세계체제의 불평등을 제거하기보다 온존시킨다는 비판은 주변부화 되었다. 6장은 한․중대학생 한국대기업 봉사단의 중국에서 벌인 활동에 대한 문화기술지였다. 단기간의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정부와 기업은 청년 실업과 고용 불안을 초래한 자본주의 체제 위기를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긍정적 화두로, 시대적 책무로 전환시켰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가 글로벌 ‘빈곤 레짐’에 소환되어 저렴하게 소비되었다.

7장은 중국 둥베이 선양 한인 타운의 한국인 영세사업자, 조선족, 탈북민의 문화기술지였다. 한국에서 중국 취업이 청년 실업의 돌파구로 권장되지만, 실제로 중국의 한국 구직자들은 공급 과잉, 저임금과 노동 악조건, 현지인들의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1990년대 가난한 중국의 조선족과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 노동자의 위계가 20년 만에 극적으로 역전되었다. 8장은 현장 연구 프로젝트의 마찰과 위계를 탐색했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와 불안정한, 위태로운precarious의 합성어다.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청년, 노인, 소수 종족, 장애인, 범죄자, 이주민, 복지 수급자 등 삶과 노동의 불안을 동시에 떠안은 다양한 집단을 포괄했다. 신자유주의 경쟁은 자립에 대한 의지로, 자격 있는 빈민과 그렇지 못한 빈민으로 빈곤의 위계를 만들어냈다.

9장은 한국사회 반빈곤 활동가들의 지구거주자로서의 윤리를 다루었다. 사회재생산에 긴요한 필수 노동은 만성적인 저임금 상태에 내몰리고, 인공적인 희소성을 만들어 상품의 ‘가치’를 키운 사람들이 재산을 증식했다.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에서 취약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단지 희생양이나 피해자가 아니라 때로는 적극적인 공모자가 되었다. 인류학자는 말했다. “빈자는 늘 누군가의 진단과 평가, 서술과 묘사에 둘러싸여 적나라하게 까발려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들이 경험한 여러 갈래의 폭력을 세세하게 노출시키는 것이 또 다른 편견과 낙인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신경 써야 한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0) 2023.08.03
은근 살짝  (0) 2023.08.02
모든 것은 그 자리에  (0) 2023.07.28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  (0) 2023.07.27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0) 2023.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