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얼음 나다 또는 뜨다

대빈창 2011. 1. 31. 05:50

 

 

'큰일났네. 얼음이 났네' 또는 '어쩐다냐. 얼음이 떴네'라는 우려와 근심어린 어르신네들의 목소리를 들은 지가 보름이 되었습니다. 위 사진을 보고 누가 바다 정경을 찍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분명 제가 살고 있는 주문도 앞바다입니다. 마주 보이는 섬이 아차도 입니다. 바다 가운데 하체는 노란색, 상체는 검은 색인 둥근 기둥은 작은 등대입니다. 불빛으로 현재의 위치를 배에게 알리는 흔히 알고있는 등대가 아닙니다. 얕은 바다인 서해에서 물속에 숨어있는 여의 위치를 알려주는 등대입니다. 강화도와 서도의 섬들 사이를 오가던 여객선은 항상 아차도앞 바다에 정박합니다. 정기 여객선의 이름은 '삼보 12호'입니다. 그런데 배가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얼음이 무서워 도망을 갔습니다. 승객 400명과 차량 42대를 적재할 수 있는 393T의 철선도 어쩔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러니 행정선이나 어업지도선은 말 다한 것 입니다. 선체가 FRP로 쓸리는 얼음에는 젬병입니다. 모두 인천 연안부두로 멀리 피양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저는 여적 바다에서는 안개가 제일 무서운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안개는 어쨌든 하루이틀이면 벗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얼음은 벌써 보름째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나거나 뜰지' 모릅니다. 얼음이 나자 겨울 한철 쏠쏠하게 만지던 가욋돈도 먼산바라기가 되었습니다. 손놀림이 잽싼 토배기들은 물때 맞추어 굴밭에 나가면 하루 1관을 쪼았습니다. 1관이면 5만원입니다. 요즘 집집마다 죄(굴을 쪼는 도구)가 바람벽에 매달려 건들거리며 녹슬어가고 있습니다. 물이 밀면 얼음이 따라 들어와 굴밭의 굴돌에 얹힙니다. 그리고 물이 썰었다가 다시 밀면 얼음은 굴돌을 달고 바다로 나갑니다. 그나마 얕은 굴밭도 바위덩어리만한 얼음들로 뒤덥혀 할머니들이 접근하기가 어렵습습니다. 부녀회에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올해는 굴쪼기를 금지한다고. 섬의 겨울은 한갖집니다. 그러나 올해는 20년만의 한파와 혹한으로 군일이 생겼습니다. 밀물을 타고 집채만한 얼음덩어리들이 선창에 슬그머니 제자리를 잡는 것 입니다. 변변한 중장비 하나없는 주민들은 배가 선창에 닿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곡괭이로 얼음을 부술 수밖에 없습니다. 강화바다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하구입니다. 그 3개의 강에서 떠내려 온 얼음덩어리들이 바다를 덮습니다. 아시다시피 서해의 조수 간만의 차는 엄청납니다.(물을 담는 그릇으로 비유하면 동해가 대접이라면, 서해는 얇은 접시로 달의 중력에 그만큼 휘둘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면서 예리한 분은 이렇게 물으실 것 입니다. 참! 얼음이 났는데 어떻게 배가 들어왔냐고. 물이 밀면 바다가 넓어지면서 얼음이 흩어집니다. 모세가 홍해의 바다를 가르듯이 갈라지는 얼음 틈새를 따라 여객선이 섬들을 재빨리 돌아 나갑니다. 물때는 하루 1시간씩 뒤로 물러납니다. 그러기에 요즘 배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제 방 창문에서 내다보는 바다는 흡사 '파타고니아'나 '아이슬란드'를 연상시킵니다. 집채만한 얼음덩어리들이 빼곡하게 뻘을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길따라 얼음덩어리들이 밀려 들며 차곡차곡 쌓입니다. 나는 이런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야! 펭귄 수십마리를 풀어놔도 살겠는데." 말이 씨가 된 것일까요. 인터넷을 검색하던 나의 동공이 커집니다. 그리고 섬찟합니다. 강추위와 먹이 부족으로 떼죽음당한 새끼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어미 펭귄과 자식을 잃은 황제 펭귄들이 마치 사람처럼 바닥에 엎드려 비통해하는 사진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말조심해야 겠습니다. 날이 풀리면 바다의 얼음이 녹아 여객선이 정상운행할까요. '꿈 깨!'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날이 푸근해지면 강의 얼음들이 풀려 더 무서운 속도로 바다에 닿을 것 입니다. 서해 외딴 섬의 봄은 더욱 더뎌질 것 같습니다. 얼음에 갇힌 작은 외딴 섬 통신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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