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시대의 우울
지은이 : 최영미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책을 통한 시인과의 인연이 꽤 묵었다. 출판사가 《창작과비평사》였다. 가격도 착하다. 9,000원이다. 내가 잡은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초판 6쇄로 1994. 5. 10. 출간되었다. 첫 시집은 50만부가 팔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시대의 우울』은 1997. 5. 30.에 나온 초판1쇄였다. 시집을 잡은 후 뇌리 한 구석에 시인이 입력되었을 것이다. 책술에 인천 부평 한겨레문고의 트레이드마크가 푸른 스탬프로 찍혔다. 붉은 잉크로 찍힌 구입날짜는 1997. 6. 11.이었다.
『시대의 우울』은 부제가 ‘최영미의 유럽 일기’로 시인이 유럽의 도시와 미술관․박물관을 둘러 본 산문집이었다. 1995. 11-12. 1996. 4-7. 두 번의 유럽여행에서 틈틈이 쓴 일기를 뒷날 정리하면서 도시별로 묶은 글이었다. 런던 / 빠리 / 브뤼셀 / 로마․아씨지 / 마드리드 / 니스 / 피렌쩨 / 뮌헨 / 프라하 / 빈 / 베네찌아. 시인의 발걸음이 머문 유럽도시다. 일기면서 기행문이었고, 미술작품 평론이기도 했다. 시인은 후기에서 말했다. “나는 미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어쩌다 건진 미술작품들은 그 막막한 여정의 전리품이라고나 할까.” 나의 짧은 리뷰는 그녀가 유럽 도시에서 만난 미술작품을 간추렸다.
런던은 노화가의 자기 확신을 그린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69)의 〈켄우드 자화상, 1663〉. 탬즈 강변의 테이트 갤러리 ‘로스코의 방’의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70)의 〈검정 위에 밝은 빨강, 1957〉에서 맨 위 희미한 붉은 사각형의 존재가 그제야 눈에 띄었다. 오늘날 대영박물관의 최대보물 엘진 마블즈(Elgin marbles)는 아테네의 고대 유적에서 발굴했다. 정확히 말하면 엘긴은 제국주의 오스만 통치자들을 구워삶아 훔쳐왔다.
브뤼셀 왕립 미술관의 브뤼겔(Piter Brueghel, 1523/30-69)의 〈이카로스의 추락, 1555-58〉은 한 인간의 예기치 못한 재난에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쾰른의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의 〈렘브란트 자화상, 1669〉의 화면 왼쪽 실루엣은 그리스 화가가 쩨우끄시스(Zeuxis, 기원전5세기말-4세기초)로 당대의 美에 대한 숭배에 반항한 화가였다. 꾸르베(Gustave Courbet, 1819-77)는 유럽 미술의 오랜 전통을 깨고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 데쌩이 정말 뛰어난 캐테 콜비츠(Kǟche Kollwitz, 1867-1945)의 〈독일의 아이들 굶주리다, 1924〉, 〈빵, 1924〉.
밀라노의 미껠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 1475-1564)의 미완성 삐에타 〈론다니니 삐에타, 1555-64〉와 정확한 인체 비례와 르네쌍스의 균형과 조화를 완벽하게 구현한 〈바띠칸 삐에타, 1499〉. 아씨지의 Basilica de San Francesco교회 지오또(?)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 1270-1300년경〉은 르네쌍스가 임박했음을 감지했다. 빠리의 평생에 걸쳐 제작한 거의 모든 인체 조각들의 원형이 총망라된 로댕(Francois Auguste Renē Rodin, 1840-1917)의 〈지옥문, 1880-1917).
마드리드 쁘라도 미술관 고야(Franciso Josē de Goya Y Lucientes, 1746-1828)의 〈까를로스 4세의 가족, 1800〉은 궁정화가 고야의 에스빠냐 왕실에 대한 은근한 냉소가 숨어있는 작품. 〈죽은 닭들, 1808-12〉은 동종의 인류에 대한 학살을 고발하는 역사화. 니스의 〈마띠스 부인의 초상, 1905〉은 지중해 기후의 영향으로 원색에 가깝게 빛나고, 샤갈의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1961〉는 구약의 창세기를 달콤한 사랑노래로 변주. 니스 시내 근현대미술관의 이브 끌랭(Yves Klein, 1928-63)의 I.K.B(끌랭이 개발한 파란색) - 표지 그림.
피렌쩨의 싼타 마리아 델 까르미네 교회의 브란까치 예배당의 마싸치오(Masaccio, 1401-28?)의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1424-25〉는 긴 칼을 들고 인간들을 낙원의 문밖으로 내쫓는 천사는 복제사진에서 위가 잘려나가 보이지 않던 부분. 〈지방장관 아들의 부활관 주교좌에 앉은 성 베드로, 1424-25〉에 마싸치오는 화가 자신의 초상을 그렸다.
뮌헨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의 표정을 한 순간에 포착한 렘브란트의 〈뮌헨 자화상, 1629〉. 국립현대미술관 다리파의 대표주자 키르히너(Ernst Ludwig Kirehner, 1880-1938)의 〈써커스의 여자 곡마사, 2012〉의 뾰족뾰족한 각진 선은 송곳처럼 관객의 눈을 찌른다.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1915-1991)의 〈에스빠냐 공화국에 바치는 비가, 1975〉는 여러 겹 덧칠한 물감의 층이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일으켰다. 빈의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의 미술사박물관 렘브란트의 〈커다란 자화상, 1652〉은 여자와 돈을 둘러싼 추문에 휘말려 파산한 40대 후반의 작품. 브뤼겔의 〈아이들 놀이, 1560〉의 어두운 비전은 화가가 살았던 혼란스런 사회상황. 아주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은〈시골 결혼식, 1568〉.
베네찌아 아까데미아 미술관 지오반니 벨라니(Giovanni Bellini, 1430-1516)의 〈싼 지오베 제단화, 1490〉의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에서 엄정한 하늘의 권위를 느낄 수 없다. 지오르지오네(Giorgione de Castelfanco, 1476-1510)의 〈폭풍, 1500-10〉은 풍경이 인물을 압도하는 강한 묘사가 충격적. 띠찌아노(Vecellio Tiziano, 1477?-1576)의 〈삐에타, 1576, 353*248㎝)는 미천한 막달라 마리아를 성스러운 비탄의 주인공으로 격상. 바르똘메오 교회의 쌀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89)는 독재자 프랑꼬 총독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초현실주의자 그룹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파리 뽕삐두 쎈터 미술관의 영국화가 프랜씨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92)의 우리가 인간이기 이전에 서로 먹고 먹힐 수 있는 살덩어리라는 사실을 소름끼치게 보여 준〈‘십자가에 못박힘’을 위한 세 개의 습작, 1962〉. 루브르(Louvre) 와또(Jean Antoine Watteau, 1684-1721)의 〈씨테르 섬의 순례, 1717〉의 미묘한 색채대비, 서로 다른 심리 상태에 조응하는 인물들의 몸짓, 정교하게 짜여진 연극대본 같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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