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강익중
지은이 : 이주헌
펴낸곳 : 마로니에북스
책판형은 189*228로 미술가의 작은 화포처럼 정사각형에 가까웠다. 내가 잡은 책은 2009. 11. 16. 초판1쇄였다. 무려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책은 그렇게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글에 필이 꽂혀 그의 책은 묻지 않고, 무조건 손에 넣었다. 나의 심정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을까.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고, 토막글들이 쌓이면서 화가의 그림이 떠올랐다. 혹시나 온라인서적에 들어갔다.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책은 그 자리에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 강익중은 1960년 9월 11일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당시 집은 서울이었지만 어머니가 해산을 위해 친정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1980년 홍익대 미술대학 미술계열에 입학했다. 미술평론가 이주헌, 권용식과 미대에 다니면서 졸업 때까지 삼총사로 지냈다. 강익중은 졸업식을 앞두고 1984년 1월 14일 뉴욕으로 갔다. 그가 다닌 대학원 과정 프랫 인스티튜트는 미국 내 36개 미술대학 연합체인 AICAD의 일원으로 브룩클린과 맨해튼에 캠퍼스가 있었다.
유학 환경이 어려웠던 그는 돈이 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학교 선정도 뉴욕 시내에서 공부하면서 학비를 버는 일을 병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익중은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모든 힘을 쏟아부어 그림 그릴 시간조차 없었다. 그가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것이 일하느라 오가는 지하철 타는 시간이었다.
그의 유명한 ‘3x3인치’그림, 3인치 7.62㎝는 한 손으로 그러잡고 다른 손으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맞춤한 사이즈였다. 그는 작은 캔버스를 여러 개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세계 유수의 여러 미술관과 빌딩을 뒤덮은 강익중의 ‘3x3인치’그림은 그렇게 남다른 악조건에서 탄생했다. 1992년 2월 열린 강익중의 퀸스 미술관 전시는 7,000개의 3x3인치 그림으로 구성되었다. 1994년 7월 22일부터 9월 28일까지 코네티컷주의 휘트니미술관 ‘멀티플/다이얼로그, 백남준과 강익중 전’은 2만 여점의 3x3인치 그림을 설치했다.
‘미래, 현재, 과거’라는 주제로 1997년 6월 15일부터 11월 4일까지 제47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렸다. ‘특별상’을 수상한 한국관에 설치한 강익중의 작품은 모두 네 개였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부르는 부처〉는 약 1,300개의 3x3인치 부처 그림. 〈영어를 배우는 부처〉는 영어 단어를 새긴 목각 부조 6,000여점. 〈사운드 페인팅〉은 3x3인치 회화 6,000여점을 도배한 작품. 〈한자를 배우자〉는 4피트x1피트의 기다란 직사각형 형태의 나무판 위에 간략하게 산의 형태를 그리고 빈 공간에 한자를 빽빽하게 넣은 작품.
1999년,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 쾰른의 루트비히미술관은 피카소, 마티스, 클레, 백남준, 바스키아 등과 함께 ‘20세기 미술가 120인’에 강익중을 선정했다. 강익중은 달항아리를 주제로 3x3 인치의 작은 화포에서 120x120㎝의 큰 화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로 그렸다. 2007년 말 서울 한복판의 광화문 복원 공사 가림막 설치그림 〈광화에 뜬 달〉은 60x60㎝의 그림 2,616개로 구성된 초대형 작품으로 높이가 27m, 폭이 41m로 사용된 물감의 양만 5백 갤런(약 1,900리터)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