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몰락의 에티카
지은이 : 신형철
펴낸곳 : 문학동네
『몰락의 에티카』는 문학평론가 신형철(1976- )의 첫 평론집이다. 2005년 『문학동네』 봄호에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판1쇄가 2008. 12. 12. 이었다. 그가 4년간 써 온 글들이 5부에 나뉘어 36편이 실렸다. 서문과 프롤로그 「몰락의 에티카―21세기 문학 사용법」, 에필로그 「울음 없이 젖은 눈―김소진에 대해 말하지 않기」까지, 721쪽 분량의 책은 묵직했다. 두 컷의 표지사진은 톰 헌터(Tom Hunter)의 After the party, Eve of the party이다.
문학평론가는 말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6쪽) 1부는 소설에 대한 글들로 윤리적으로 급진적인 소설들이 문학적으로 훌륭하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 강영숙의 『리나』, 박민규의 『핑퐁』을 통해 소설과 현실과의 관계를. 김훈의 소설에서 역사는 우리의 현재가 이미 ‘역사’라는 형식으로 과거에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영화 〈올드보이〉를 오이디푸스 누아르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오디세우스(윤희중)와 세이렌(하인숙)으로 읽고. 박성원의 소설 『이상李箱 이상異常 이상理想』, 『나를 훔쳐봐』, 『우리는 달려간다』에서 이상李箱에 대한 집요한 오마주이고 데카르트의 포스트모던한 복습을.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문학이 사유한 윤리를 가장 급진적으로 보여 준 작가 김영하와 배수아. 복도훈, 강유정, 허유진의 세 편의 평론에서 윤리―시학(ethics―poetics)을 비교.
2부는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글을 모았다. 뉴웨이브는 자기를 주체화, 타인을 타자화, 풍경을 상처화하는 세 가지 길. 황병승․김민정의 도착倒錯, 독백의 김행숙, 환상의 이민하, 음악의 이장욱. 한국 현대시의 주류적 감각인 서정적 휴머니즘과 지사적 계몽주의를 단호하게 거절한 강정의 이종교배 상상력. 2006년 여름의 한국시로 도종환의 『해인으로 가는 길』과 손택수의 『목련 전차』는 삶을 총체적으로 진단,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과 최정례의 『레바논 감정』은 어떤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서정시, 이장욱의 『정오의 희망곡』과 이근화의 『칸트의 동물원』은 비선형적 카오스의 미학. 2000년대 시의 ‘깊이’에 대한 단상. 강정이 감각을 ‘짐승의 진동’으로 감지하는 유물론자라면 김경주는 감각을 ‘영혼의 음악’으로 느끼는 관념론자. 2005년을 전후해서 새로운 파도가 하나 밀려왔다고 진단(뉴웨이브).
3부․5부는 단행본에 수록된 해설들을 모았다. 한국문학이 잃어가고 있는 세계는 구원되어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나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남진우의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가볍고 유연하며 자유로운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 명료한 것은 명료한 대로, 불명료한 것은 불명료한 대로 이민하의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저항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냉소와 체념의 시대를 전복하는 문혜진의 『검은 표범 여인』. 헤어짐의 풍경, 공기, 기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노래하는 이병률의 『바람의 사생활』. 비밀을 잘 다룰 줄 아는 시인 장석남의 근작시. 삶과 죽음이 함께 웃는 김근의 『뱀소년의 외출』.
한국의 근대화는 절름발이로, 의식에 남겨진 거미줄을 하나씩 제거하는 의식의 재개발사업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착종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 이기호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전복적 여성상과 취재형 묘사가 트레이드마크인 천운영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 실재의 미학(기괴함)이 실재의 정치학(섬뜩함)으로 진화해가는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 007의 애국주의, 자본주의, 남근주의라는 3대 이데올로기를 조롱하고 해체하는 오현종의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IMF 현실, 서울 문화의 은근한 배타성, 가족 결핍증의 인물들과 마주치는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리얼리즘 눈으로 90년대 소설을 ‘긍정적’으로 ‘비판’하고, 모더니즘의 눈으로 2000년대 소설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문학평론가 김영찬의 『비평극장의 유령들』.
4부는 한국 현대시사現代詩史의 초안으로 시와 시론을 다루었다. 이상의 시선은 건축물을 ‘투시’하는 시선으로 외관을 설계도의 차원으로 되돌려 해체, ‘오감烏瞰하는 시선’으로 그 해체의 전략을 ‘탈 건축적 상상력’이라고 불렀다. 윤동주는 「병원」을 경계로 비로소 습작기의 어설픔과 작별. 김수영은 ‘4․19 혁명’으로 ‘사랑’이라는 ‘진리’를 배운 이래 그 사랑을 포기한 적이 없다. 이상, 김수영, 황지우로 이어지는 한국의 전위적 모더니즘이 보여 준 유례없는 활력은 한 시대의 증상과의 철저한 동일시를 딛고 얻어진 성취. 오생근의 비평은 어딘지 모를 ‘집’으로 가는 먼 길이고, 부정성을 끌어안은 채 긍정으로 뻗어가는 지난한 길. 그동안 여성성이라는 우주를 독보적인 방식으로 탐구해 온 김혜순의 연애시. 한국시에서 섹스를 부각시킨 김수영의 「성性」, 장정일의 「늙은 창녀」, 김언희의 「가족극장, 이리 와요 아버지」, 황병승의 「에로틱파괴어린빌리지의 겨울」.